본문 바로가기
함께 읽고 싶은 글

함장과 선장의 용기는 국격에 비례한다.

by 눈떠! 2014. 4. 19.

[서울 경제 권홍우 기자의 밀리터리 레터]

 

함장과 선장의 용기는 국격에 비례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어린 학생들을 사지에 놔두고 선장이 먼저 탈출하다뇨. 세계 어느 나라든 선원법에 ‘선장은 위급시 승객과 승무원 전원의 하선을 확인한 후에야 내려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명예와 용기는 물론 의무마저 포기한 것인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선장 또는 함장의 용기는 국격을 드높인다는 점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찌질이 선장은 나라에 망신을 안깁니다.

 

못난 놈부터 보죠. 지난해 승객을 버리고 도망갔던 이탈리아인 선장 셰티노는 승객을 구호할 의무를 저버린 죄를 2,679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죠. 그가 도망가던 당시 해안경비대장과 통화내용을 찾아 보십시요.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탈리아의 국격을 완전히 말아먹었습니다. 셰티노 선장이 포기한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의 침몰로 사망한 사람은 32명입니다. 피지도 못한 아이들을 뒤로 남긴 세월호의 한국인 선장은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할까요. 그는 살아도 산 게 아닐 겁니다.

 

죽어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는 말 들어보셨는지요. 버큰헤이드호는 1,918톤짜리 외륜증기선으로 영국해군 수송함이었습니다. 해상에서 긴급한 사고가 발생하면 선원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 타이타닉호의 침몰 순간에도 그랬답니다. 왜 그럴까요. 위험상황에서 여자와 어린아이부터 구출하는 위대한 전통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1852년 2월26일 아프리카 남단 해역에서 발생한 버큰헤이드호 침몰사건의 ‘알려진’ 개요는 이렇습니다. 암초에 걸려 침몰 직전의 혼란한 상황에서 수병들이 갑판 뒤로 물러섰답니다. 승선인원이 제한된 구명보트에 여자와 어린아이를 먼저 태우기 위함이었다죠. 보트에 옮겨 탄 군인 가족들은 부동자세를 유지한 채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남편과 아버지를 보며 울부짖었습니다.

 

가슴이 저미는 얘기지만 전후관계가 불투명한 구석이 있습니다. 승선인원 643명 가운데 193명이 살아 남았는데 ‘전원 구조됐다’는 여자와 어린아이를 합쳐도 20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생존자는 군인이었죠. 사고가 새벽 2시에 발생했기에 가족들이 보트에서 침몰 순간을 제대로 목격했다는 점도 의문스럽습니다. 사건이 널리 알려진 것도 발생 직후가 아니라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1859년)’과 키플링의 시 ‘버큰헤이드 드릴(1860년)’이 출간된 뒤입니다. 무게 3톤에 달하는 금화를 배에 적재했느냐도 논란거리입니다. 억측이기를 바라지만 장교들이 수병들을 집합시킨 진짜 이유는 혼란을 틈탄 금화탈취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89년 해저에서 금화가 발견될 경우 양분한다는 협정까지 맺었으니 사실일 가능성이 짙습니다. 중요한 점은 무엇이 진실이든 고귀한 전통이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도 사람들은 ‘버큰헤이드를 기억하라’는 귓속말을 나누며 여자와 어린아이를 먼저 구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전통이 접목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반대입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일본인들 얘기입니다만 버큰헤이드보다 장엄한 영웅담을 소개합니다. 때는 지난 1910년 봄, 일본에서 73톤에 불과하지만 최신형 군함 한 척이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제6호 잠수정. 사고 함정의 이름입니다. 미국에서 다섯 척을 직도입한 홀랜드급 잠수정을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한 함정입니다. 미국제보다 신뢰성이 떨어졌어도 일본의 첫 국산 잠수정이었기에 우수인력들이 배치됐습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두 번째 잠항훈련에서 6호정은 히로시마만의 16m 해저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얘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침몰 이튿날 인양된 6호정은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14명의 승조원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자기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정장은 사령탑에, 기관장교는 전동기 옆에, 조타병은 조타석에서 죽었습니다. 단 두 명 예외가 있었는데 함을 고치는 병사들이었습니다. 마침 영국 해군에서 동형의 잠수정이 침몰했을 때 먼저 탈출하려고 시신이 출입구에 엉겨붙은 채 발견되고 심지어 유럽의 어떤 나라에서는 난투극까지 일어났던 터라 전 세계는 일본 군인들의 죽음 앞에 전율했습니다. 일각에서 조작설을 제기했으나 정장 사쿠마 쓰토무 대위의 유서 하나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사고발생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두 시간 동안 그는 침몰 원인과 대응을 상황별로 기록했습니다. 975개 글자로 이뤄진 유언 중 가장 감명을 준 대목은 일본 국왕에 대한 탄원입니다. ‘폐하의 배를 침몰시키고 부하를 죽게 한 소관의 죄는 씻을 길이 없으나 승조원들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나이다. 그들의 유족이 곤궁하게 살지 않기를 오직 바라나이다.’

 

영국의 데일리 뉴스의 동경 특파원은 이런 기사를 타전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용감할 뿐 아니라 정신적ㆍ도덕적으로 빼어난 민족이다.’ 장엄한 죽음 앞에 각국의 황제와 국가 원수들의 조전이 쏟아지고 영국 해군의 교범에 6호정의 사례가 실렸습니다. 미국 의회 의사당에는 사쿠마 대위의 유서가 전시됐습니다. 일본을 ‘운 좋게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아시아의 노란 원숭이’쯤으로 여겼던 구미 각국은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일본은 훈장과 특진, 영웅 칭호도 내리지 않았지만 위대한 자산을 얻었습니다. 국격도 높아졌겠죠. 선장이나 함장은 지도자입니다. 명예를 지키고 용기를 잃지 않는 지도자와 국격은 비례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함장을 볼 수 있을까요. 명예와 용기…. 실은 남 탓할 것도 아닙니다. 점심 때 TV를 보다 친구를 그리며 우는 여학생의 모습을 보고 수저를 내렸습니다. 울컥하고 목도 매였지만 이 땅의 중년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함께 읽고 싶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교과서 읽고 수업 집중 .. 기본에 충실한 전교 1등  (0) 2014.04.30
4.19 혁명에 대하여  (0) 2014.04.20
물 컵 내려 놓기  (0) 2014.04.06
  (0) 2014.01.18
영원의 만남  (0) 2013.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