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이 그 후

김행수 선생님 댁에서 초과 근무

눈떠! 2024. 1. 14. 14:07
김행수 선생님 댁에서 초과 근무함.
 
지난 금요일(2024.1.12) 김행수 선생님 댁에 모여 한 자리에서 8시간 30분 동안 이야기 꽃을 피우며 술을 마셨다.
12시 반, 불광역에서 김호진 선생님을 만나 함께 네이버 네비를 보며 선생님 댁을 찾았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나도 상계동 구석의 주공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선생님댁은 불광동 단독주택에 살고 계셨다. 오래 전 강원도 촌놈이 국민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이사와서 결혼하고 3년까지 살았던 서울의 보통 살림집들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좁은 골목과 단층 벽돌집들로 이루어진 동네는 조금은 낡은 모습이었지만 따뜻하고 정겨운 곳이었다.
골목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집을 찾아가는 길이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쭉 뻗은 넓은 길이 아닌데도 하나도 불편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처음가는 길이 오래 전부터 다니던 길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나도 이제는 늙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이런 골목에서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를 발로 차며 뛰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살아나서 였으리라.
 
초인종을 누르니 노란 대문을 열고 사모님이신 정선생님께서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셨다.
대문 오른쪽으로 조긍산 화단 겸 텃밭에는 걷이가 끝나고 마른 줄기만 남은 이름모를 몇몇이 남이 있었다.
낮은 담장 저편으로는 삼각산의 은평쪽 마지막 봉우리인 족두리봉이 성큼 다가선다.
날이 따뜻한 봄에는 마당에서 저 삼각산에 푸르게 살아나는 신록을 보며 둘러앉아 막걸리 한잔 나누면 무주구천동 정자가 부럽지 않을 곳인 것 같다.
 
누추하다며 수줍어 하는 사모님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서니 거실 가운데 아담한 상 두개를 붙여 놓고 상다리 부러지게 삶은 문어다리를 썰고 해삼을 회 쳐놓았으며 가리비를 삶아 속살을 담아 놓은 접시를 중심으로 각종 야채와 김치들을 늘어 놓았다. 술도 직접 담근 은행주, 황매실주, 청매실주, 개살구주, 더덕주, 살구주에 샴페인, 포도주, 화요 소주에 각종 맥주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곧 이어 노선생님께서 파란 장미 한다발을 들고 오셔 잔치가 시작되었다.
김선생님과 정선생님께서 번갈아 바로 옆의 부엌을 드나드시며 조금이라도 떨어지는게 있으면 바로 채워주셨다.
자리에 둘러 앉아 선생님 고향인 남해에서 채집한 재료로 직접 담근 여러가지 담금주 번갈아가며 잔을 채웠다.
은은하고 달콤하고 시큼하기도 하고 투명한 맛이 나는 여러 술을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우니 시간이 올림픽 100m 결승 마냥 흘러갔다.
 
집 이야기, 선생님들 모였으니 학교 이야기, 퇴직한 꼰대들 옛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등 80년 대부터 현재까지, 가끔은 미래에 까지 60여년을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로 웃고 떠들며 안주를 삼으니 술이 취하질 않았다.
5시 조금 넘어 붕어빵을 들고 박선생님께서 오셨다. 사모님께서 매운탕과 밥을 내어 오셔 맛있게 먹고 김호진 선생님께서 약속이 있어 먼저 일어서시고 우리는 계속 군대이야기까지 음주 담소를 나누었다.
 
앞에 나란히 앉은 신혼부부(?)의 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는 곳은 따뜻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기운이 모두를 감싼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두 사람의 마주보고 웃는 모습, 특히나 속은 따뜻하고 깊지만 겉으로야 무뚝뚝하기로 금메달감인 김행수 선생님 얼굴에 빛나는 미소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었다. 교육현장에서, 학교 안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수많은 모순을 정면으로 부딪치며 고쳐나가고자 애쓰는 김행수 선생님에게 이렇게 쉴 수 있는 따뜻한 집과 기댈 수 있는 사모님이 계시다는 것이 너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공연히 나까지 힘이 나고 뭉클하기도 하고 행복했다.
내가 동성에서 38년 교사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내와 이 후배 교사들 덕분이었음을 새삼 느꼈다.
 
김행수 선생님이 담근 술을 다 마시진 못 했지만 사모님께서 살짝 나가셔서 사오신 캔맥주까지 마시고 시계를 보니 9시 반이 되었다. 아직도 정신을 멀쩡하고 할 이야기와 나눌 정은 태산 같지만 벌써 30분이나 초과근무를 했으니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어 섰다.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면 8시간 반을 한 자리에 앉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헤어지기 아쉽고 섭섭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 분은 불광역까지 우리를 마중하겠다고 따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