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끝나가지만 겨울이 봄을 시샘하듯 폭설이 이어졌다.
나뭇가지가 휘청일 정도로 많은 눈이 온 세상을 덮고 겨울의 마지막 위새를 뽐냈건만 기어코 매회꽂이 자태를 드러냈다.
봄은 기어코 오고야 만다. 아무리 북풍한설 엄동설한이 매울지라도 매화는 여린 가지 꽃눈 속에서 자신을 단련해 마침내 새로운 세상을 드러내고야만다.
매화와 발맞춰 눈덮힌 땅속에서도 풀들의 연두, 그 생명 깃발이 들어 올려진다.
그것은 두 주먹 불끈 쥐고 뻗어 올리는 힘찬 팔뚝질의 아우성이다.
종류에 상관없이 온갖 풀들이 앞다퉈 언 땅거죽에 균열을 내고 피어 오른다.
지표면이 혁명적으로 색을 변화시킨다. 흰눈에 가려졌던 삭막한 어둠의 빛을 뚫고 초록, 그 생명의 빛으로.
어둠이 세상을 덮어가는 저녁 8시 손녀와 함께 발견한 매화 꽃 한 송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 준다.
"하부 그 뒷 가지, 또 옆 가지에도 매화꽃이 달려 있어요. 그리고 낮에 봤는데 저기 양지쪽엔 목련꽃도 피었고 산수유 노란꽃도 활짝 폈어요."
그렇구나. 너는 벌써 봄을 봤는데 하부는 아직도 겨울에 살며 이제사 그 언저리를 느꼈구나.
그래서 손녀는 춥다고 감기 걸린다며 지청구하는 할애비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봄옷을 입었나보다.
봄은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해봐도 생명이 용솟음치는 젊음의 계절이다.
아무리 꽃샘추위가 봄을 윽박질러도 그것은 그저 겨울의 마지막 안간힘일뿐 결코 연두, 초록의 새순과 온갖 색깔로 피어나는 저 꽃들을 이겨낼 순 없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고 온 우주의 깨지지 않는 법칙이자 우리네 인간사에도 변하지 않고 적용되는 진리다.
겨울은 봄에게, 어둠은 빛에게, 할애비는 손녀에게, 늙은이는 젊은이에게, 불의는 정의에게, 그름은 옳음에게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발버둥친다해도 세상은, 세월은 그렇게 수레바퀴를 굴린다.
가녀린 가지에 매달려 스스로를 빛내는 매화꽃 한 송이는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불러내고야 만다.
하부! 이제 봄이 온거지?
그래, 이제 봄이 왔구나. 우리 재아의 시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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