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 위 물건들
새로 집을 꾸미면서 작은 아들이 큰아들이 쓰던 방으로 옮겨가고 작은 아들이 쓰던 방에 붙박이 장을 만들고 피아노와 전에 쓰던 식탁을 옮겨 책상으로 사용하며 내 방으로 꾸몄다.
옷장으로 쓰는 붙박이 장에는 작은 아들의 옷이 가장 많이 있고 아내의 옷이 그 다음으로 많이 있고 그 밖에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나름 중요한(?) 여러 가지 물건이 들어있는 투명 박스가 들어 있으며 아내와 손주들이 주로 사용하는 피아노가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내 방으로 명명되었다. 아마도 결혼하고 처음 갖는 내 방이다.
새로 식탁을 장만해서 예전에 쓰던 식탁을 창가에 배치하고 사용하기로 했다. 4인용 식탁이어서 굉장히 클 줄 알았는데 막상 이것 저것 올려 놓다 보니 글을 쓰기에도 좁은 곳이 되어 버렸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내 병에서 기인한다.
우선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스텐드형 컴퓨터와 모니터, 그리고 스피커는 작은 아들이 쓰다가 버리려는 것을 내가 쓰겠다고 한 것이다. 2015년 작은 아들이 학군 51기로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면서 쓰려고 그 당시 최고급 기종으로 컴퓨터를 꾸몄다. PC방 최신형 컴퓨터보다 더 성능이 좋다고 자랑했었다. 그러던 것이 2022년 어느 날부터 부팅이 되면 자꾸 저절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한다며 노트북을 구입하고 버린다고 하는 것을 내가 고쳐 써보겠다고 했다.
사실 컴퓨터에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고칠 수 있으랴마는 당장 버리기 아깝고 또 퇴직하면 할 일도 없는데 컴퓨터 조립 책이나 한 권 사다가 보면서 뜯었다 먼지 털고 다시 맞춰보려고 한 것이다.
일단 마트에 가서 먼지 제거 스프레이와 방청 윤활제를 한 통씩 사왔다. 컴퓨터를 거실에 옮겨 뒤쪽 판을 뜯고 진공청소기를 이용해 커다란 먼지를 제거했다. 그리고 전원을 넣어 보니 컴퓨터 내부의 여러 군데 달려 있는 환기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이 보였다.
면봉과 먼지 제거 스프레이를 이용해 환풍기의 먼지를 제거하고 윤활제를 뿌리고 특히 전원 스위치 부근은 바람을 많이 불어 더 세밀하게 청소했다. 그리고 모니터를 연결하고 전원을 켰더니 바로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지금껏 내가 만져 본 모든 컴퓨터 중 가장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공짜로 굴러 들어왔다. 역시 전자 제품은 먼지가 가장 큰 적임이 증명되었다 고나 할까. 물론 나야 게임도 하지 않고 그저 인터넷 검색이나 하고 한글 워드 작성이 다 이니 사실 이렇게 좋은 컴퓨터가 필요 없지만 그래도 큰 모니터에 반응이 빠르니 너무 좋았다. 컴퓨터를 놓을 곳이 없어 예전 피아노 방 입구에 작은 접이식 책상을 놓고 설치해 놓았었는데 쓰기가 불편해 자주 사용하지 못했었지만 이제는 편하게 쓸 수 있으니 버리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퇴직을 하며 학교 생활을 하는 중 작성했던 글이며 사진을 모두 옮겨도 넉넉한 하드 용량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별 일이 없는 한 나의 남은 삶을 함께 할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모니터 아래에 있는 음향 기기는 84년 제대하며 용산 PX에서 제대 기념으로 큰 맘먹고 구입한 인켈 오디오 전축을 버리고 산 라디오, CD, USB 를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기기이지만 나름 잘 사용하고 있다. 다음에는 턴테이불이 있는 것으로 구입할 예정이다. 제대 후 교사 생활을 하며 한 두 장 씩 사 모은 LP판이 백 여장 베란다 귀퉁이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데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 줄 생각이다.
그러자면 책상 밑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앨범과 몇 물건들을 버리긴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컴퓨터와 USB로 거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LP판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물건이 아깝기 보다 그것을 사 모은 내 삶의 기억 때문이라면 변명이 될까?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봉급 날마다 교문을 나서 대학로 바로크 레코드 점과 동양 서림에 들려 LP 한 장과 책 몇 권을 사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컴퓨터 하드 위에는 성모상과 역시 작은 아들이 뱀을 사육하며 쓰던 장식용 돌이 있다.
그리고 모니터 아래에는 수학교육과 절친인 남일이가 미식축구 국가 대표팀으로 일본 원정을 갔다 오며 사다 준 도쿠가와 이에야스 문장이 있는 작은 함, 눈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가린 원숭이 세 마리가 마무리를 잘 하며 꼰대가 되지 말라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 유품인 손목시계, 역시 작은 아들이 준 이어폰, 2023년 학교에서 나누어준 마지막 스승의 날 선물인 부루투스 미니 카카오 , 그리고 스피커 위에 거북이 미니어쳐 세 마리, 음향기기 앞의 공룡과 돌하르방 역시 작은 아들 방을 정리하며 나온 것이다.
오른쪽 검은 플라스틱 사물함은 볼펜, 필통, 전선, 외장 하드 등 학교에서 사용하던 학용품과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들어 있다. 사물함 위 공룡들은 역시나 작은 아들이 주었고 뒤쪽의 필기구 통과 달력은 학교에서 쓰던 것들이다.
노트북은 퇴직하며 들고 다니며 글을 쓰겠다고 큰 맘 먹고 구입한 것으로 글을 쓰고 여러가지 개인적인 업무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 제주여행에 가지고 가 여러가지 일에 잘 사용했다.
데스크 탑 겸퓨터 앞에도 잡동사니가 잔뜩 있다.
차마 버리지 못한 큰 아들이 사준 공기 청정기, 에어 스프레이, 방청윤활제, 에어로 신신파스, 아내가 테니스 치러 갈 때 바르라고 준 선크림 두 개, 포장도 뜯지 않은 작은 아들이 준 차량용 미니 가습기, 그리고 물티슈 네 개. 자은 아들이 준 최고급 게임용 헤드폰이 쌓여 있다. 향초도 세 개나 있고. 반 쯤 먹은 다크 쵸코렛도 한 통, 검정색 파커 만년필용 잉크도 자리를 잡고 있다.
사물함 앞에는 고등학교 수학1과 삼국 유사 그리고 매일 미사가 놓여 있다. 수학 책은 재미 삼아 풀어보려고, 삼국 유사는 손주들에게 옛날 이야기 해주려고, 매일 미사는 말 그대로 미사 참여 하는 마음으로 성경 구절 읽으려고 놓았지만 생각처럼 꾸준히 대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책상 밑은 지금까지 살아 오며 받고 만든 많은 앨범들이 차지하고 있다. 국민학교부터 대학까지 졸업 앨범과 사진들로 만든 앨범, 결혼 앨범, 그리고 아이들 키우며 지난 37년 간 찍은 사진들로 채워진 앨범들이다. 자주 꺼내보지는 않지만 참으로 버리기 쉽지 않은 물건들이다. 언젠가는 의미 없는 종이에 불과해 지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내 삶의 한 조각이었으니.
그리고 운동 기구들과 쓰레기통이 있다.
창 밖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빛난다.
내 마음은 언제나 저렇게 아무 것도 거리낌 없이 될 수 있을까?
내 마음은 책상 위 저 많은 물건들보다 더 복잡하고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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