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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다낭 여행

베트남 다낭 여행 2일차

by 눈떠! 2024. 2. 7.
2024년 2월 3일(다낭 여행 2일차)
 
오늘 아침 가이드와 11시에 만나기로 했다.
어제가 여행 첫날이어서 피곤하셨을테니 푹 주무시고 여유있게 아침을 보내라고 여행 가이드가 말해줬다.
그래도 인체 시계는 오전 5시(한국 시간 7시, 베트남 시간은 우리나라보다 2시간 빠름) 전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일어나자마자 간단히 세수를 하고 수영복을 챙겨들고 수영장으로 갔다.
 
호텔 2층에 실내, 실외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다고 했다.
수영장에는 세 사람이 있었고 친구 경달이가 수영장 선 배드에 누워 있다 반갑게 맞아줬다.
그런데 탈의실이 없어 잠시 당황했다.
호텔 직원에게 더듬더듬 물었더니 화장실 겸 샤워장에서 갈아입으라고 한다.
수영장에 오는 호텔 투숙객들은 숙소에서 수영복을 입고 샤워 가운(?)을 걸치고 오는 것 같았다.
다시 샤워장에 들어가 수영복을 갈아 입고 옷과 신발을 들고 수영장으로 들어와 선 배드 밑에 놓은 후 물에 들어 갔다.
 
실내 수영장은 길이가 15m 정도 밖에 안되고 레인도 없어 다른 사람과 부딪칠까봐 불편했다.
몇 바퀴 돌고 아내와 실외 수영장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조금 물이 차갑게 여겨졌으나 두어 바퀴 돌고 나니 몸이 훈훈해 졌으며 사람도 없고 레인은 없지만 길이도 한 40m 정도 되어 마음놓고 수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아내와 20바퀴 정도 돌고나니 몸이 풀리고 기분이 좋았다.
서울에서 함께 수영장을 다니다 그만 둔지 10 여년이 되었는데도 조금 폼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할 만 했다.
한 40 여분 수영을 하고 같은 층에 있는 헬스장에 들려 잠간씩 아내에게 헬스 기구들을 들어보게 했다.
헬스장은 운동 기구도 기본적인 것들이 하나씩 있는 생각보다 좁은 곳이었다.
숙소에 들려 수영복을 놓고 아침을 먹으러 M층의 부페 식당 RUMBA로 갔다.
 
수영장에서 보니 호텔 가까이 성당이 보여 직원에게 물어보니 10분쯤 걸어가면 되고 미사 시간은 모른다고 했다.
시간이 허락되 내일 미사를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M층이 1층과 2층 사이에 있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 버튼이 따로 떨어져 있어 처음에는 2층에서 내려 계단을 통해 식당으로 갔다.
각자 숙소 카드를 찍은 후 입장하니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베트남식 등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제공하는 맛집(?)이었다.
가이드가 추천한 요구르트를 포함해 샐러드와 치즈, 바게트와 우유 등 이것 저것 배부르게 먹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무얼 먹어도 맛있다고 해 아내는 내게 요리의 간이며 맛을 물어보지 않는다.
 
식사 후 잠시 쉬다 간단히 가방을 챙겨 들고 10시 50분 쯤 로비에 내려갔다.
가이드 강선생, 베트남 가이드 짱과 인사를 나누고 나니 친구들이 속속 내려왔다.
버스에 올라 가이드 강선생의 이런 저런 수다를 들으며 다낭과 호이안의 중간쯤에 있는 마블마운틴(오행산, 지옥동굴:암푸동굴)으로 향했다.
 
오행산이라고 하지만 손오공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물, 나무, 불, 철, 흙을 나타내는 다섯 개의 산을 뜻 하며 대리석이 많이 나기 때문에 마블 마운틴이라고도 부른다 한다.
지옥굴은 대리석으로 드러난 산 속 동굴에 지옥을 형상화한 여러가지 조각들을 배치해 놓은 곳이었다.
입구의 작은 다리(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 밑에 물 밖으로 손만 내민 조각을 시작으로 지옥의 귀신들에게 고통받는 죄지은 사람들 상을 굴속 여기 저기에 배치했으며 좁고 불편한 통로가 지옥을 연상시켰다.
한편으로 자만일지 모르지만 '아! 지옥이 이렇게 좁다면 내 자리는 없겠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참 앞사람 궁둥이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며 동굴 벽면의 움푹한 곳에 벌 받는 여러 형상을 보며 따라가다보니 넓은 공간이 나타나고 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여래상이 있고 아래쪽으로는 지옥, 위쪽으로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지옥 가는 길이 좁은 것처럼 천국 가는 길도 좁고 가파랐다. 
지옥에는 머리 숙여 들어가봤지만 천국 쪽은 사람이 너무 많아 중간쯤에서 돌아 나왔다.
내삶을 잠깐 돌아보니 설사 지옥에 가지 않더라도 천국 갈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곳처럼 천국쪽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곳까지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굴을 나오면서 다리 위를 다시 보니 12띠를 형상화한 후 동물상을 앞 뒤로 6개씩 세워져있었다.
다리를 지나며 자기 띠를 만지면 죄가 씻어진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점심으로 노니 족발을 먹고 다시 버스에 올라 호이안으로 향했다.
호이안은 500년 전부터 동남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여러나라의 건축 양식이 어우러진 관광지로 수많은 외국인들로 거리가 붐볐다.
그러나 그 외국인들 속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띠었고 거리 곳곳에서 우리 말이 심심치않게 들려왔다.
호이안 콩카페에서 카카오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길가의 창쪽 좌석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마시는 커피는 또 다른 맛이었다.
커피 강국답게 베트남에서 마셔 본 커피는 맛과 향에 둔감한 내게도 감미롭고 향긋하게 다가왔다.
퇴직 전 동성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갔던 혜화동 로터리에 있는 조그만 카페의 이름도 콩카페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가이드 말로는 그곳이 이 콩카페 분점이라고 했다.
 
커피를 한 잔하고 시클로 투어를 하기 위해 자전거가 집결해 있는 조금 넓은 사거리로 짱아를 따라 이동했다.
길 양쪽 건물들은 프랑스,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곳에 베트남 전통 옷과 양복, 드레스를 파는 가게, 가방이나 지갑, 신발등 소가죽 공예품 가게, 그리고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로 이루어졌고 길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여행을 하면 사람 구경이 가장 큰 구경 중 하나라는 것을 실감한다.
사람들은 참 대단하고 묘하다. 익숙한 자기 영역을 떠나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할까?
사실 새로운 것들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두렵기도하고 또 당연히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는 것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어서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나보다.
사람들 중에서도 더 진취적인 인종들이 덜 진취적인 인종을 지배하던 시대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된다.
문득 선생이었던 탓인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지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나는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이기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쳤나 하고 반성이 된다.
 
씨클로 16대가 줄지어 늘어서고 우리가 탑승하자 꼬리를 물고 긴 뱀처럼 사람들 사이를 뚫고 한 20분 정도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 근처 투본 강변 선착장에 내려 줬다.
씨크로 투어를 하며 바로 앞에 아내를 태운 사람과 나를 태운 사람의 운을 생각해 봤다.
같은 돈을 받고 순간의 차이로 20kg이나 더 무거운 나를 태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가 궁금해졌다.
산다는 것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각각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는가는 각자에게 달린 몫이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왜 나한테만'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몫을 기꺼이 짊어지는 태도가 행복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믿는다. 삶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깨닫고 노력하는 것이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다. 여행은 사람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호이안을 야경이 더 아름답다고 하지만 우리는 다낭 숙소로 돌아가야 하므로 낮에 투본강 투어를 위해 유람선에 올랐다.
호이안을 가로 지르는 투본강은 시내에서는 청계천 정도 였지만 배를 타고 조금만 하류로 내려오니 한강 정도로 넓어졌다.
수많은 나라들이 드나들던 국제무역항으로서 천혜의 환경을 가졌다고 할 만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 답게 배에 오르자 선장이 바로 K -pop 과 트로트 곡을 틀어 주었다.
30분 정도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갔다고 돌아서 호이안 시내가 아닌 변두리 선착장에서 내렸다.
전기차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인원체크를 하니 덕철이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당황했지만 덕철이 집사람이 전화를 하니 배에서 내려 화장실에 갔다 오니 사람들이 안 보여 선착장 근처에 있다고 했다. 버스 안에서 기다리며 여럿이 함께 여행하면 이런 사고가 늘 있다며 웃고 농담하는 동안 가이드가 친구를 데리고 왔다.
 
다낭으로 돌아와 저녁으로 옵션 중 하나인 씨푸드를 먹었다.
바다가제를 포함한 다금바리회, 매운탕이 나왔는데 상이 정말 화려하게 차려져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베트남에서는 비싼 소주를 시켜 반주 삼아 맛있게 먹고 마셨다.
언제나 그렇지만 내 입에는 다 맛있었는데 특히 고명으로 나온 이름모를 바닷풀이 특별했다.
앏은 줄기에 이슬같은 잎이 달린 바닷풀은 입에 넣고 씹으면 작은 날치알이 터지는 것 같은 식감이었다.
하지만 식사를 끝내고 아내는 첫날 제육볶음과 낙지볶음만 못 했다며 별로였다고 했다.
왜 나는 무얼 먹어도 맛을 감별하지 못하고 맛있는 걸까? 하며 조금은 씁쓸했다.
식사를 마칠 즈음 덕철이가 버스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숙소 맨 위층인 37층 루프 탑으로 오면 간단히 음료 한 잔 사겠다고 했다.
 
짐을 풀고 37층으로 올라가니 몇명을 빼고 친구들과 아내분 들이 앉아 있었다.
여자들에게는 원하는 칵테일을 한 잔씩, 그리고 발렌타인 24년 산 한 병과 과일 안주를 시켰다.
서울에서도 덕철이는 친구들이 모이면 늘 이차로 술 한잔을 기분좋게 사는 친구다.
조금은 미안하지만 친구 덕에 강남 간다고 친구 덕에 호강을 했다.
다낭의 야경을 보며 웃고 농담을 하며 기분 좋은 시간을 가졌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소중하다는 것을 더 깊이 느낀다.
친구와 함께라면 산길이든 들길이든 막걸리든 쓴 소주든 김치 한사발이든 고기안주든 별로 구별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좋은 친구보다 더 좋은 술, 더 좋은 안주는 없다.
더구나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베풀고 유세하지 않는 친구를 가까이 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복이다.
지금 여기 다낭에 함께 온 친구들이 내게는 다 그런 친구들이다.
우리들이 그렇게 지내니 아내들도 30년 넘게 서로 언니, 동생하면서 잘 지낸다. 자주 만나지 못 해도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며 기쁨을 나눌 수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또 다낭에서의 하루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