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 한 달 살이 그 후

집 밥, 진수성찬

by 눈떠! 2024. 3. 24.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퇴직해 집에 있는 남편을 위해 수고를 마다않고 따뜻한 아침해 주는 아내에게 공연히 미안하다.
며칠 전 아내 지휘하에 담근 오이소박이가 익어가기 시작했는데 그 냄새가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향수보다 더 황홀하다. 가끔 아니 자주 아내에게 쓸데없이 예민한 청각에 비해 미각이나 후각이 저렴하고 둔하다고 핀잔을 받지만 그래도 향기롭고 맛있는 것은 나도 안다. 단지 덜 향기로운 것도 적당히 참아내고 맛있지 않은 음식도 맛있게 먹을 뿐이다.
 
각종 김치가 익어가면서 풍기는 냄새는 모두 좋지만 특히 오이 소박이가 익어가는 냄새는 시원하고 산뜻하게 향긋하다.
속이 뻥 뚫리는 냄새라고 할까?
게다가 요즘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인 임면수 속칭 새치를 거의 매일 구워낸다.
부드러운 살도 살이지만 새치 껍질은 정말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다.
그런데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식구들은 살만 먹고 껍질을 남기니 나야말로 복받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잘 익은 총각 김치에 또 하나의 환상 조합인 된장 찌게와 노른자를 덜 익힌 계란 후라이까지 밥상에 올랐다.
도데체 이 맛있는 반찬을 어떻게 밥 한 공기로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다 신경질이 날 지경이다.
또 그릭 요거트를 뿌린 불루베리까지 놓여 있으니 세상 어떤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만 역시 음식은 입에 넣고 씹어야 맛이다.
오래 씹어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다고 할까?
이 맛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아! 행복하다.
옛 선비들이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게 하고 누워 하늘을 보며 안분자족 했다는 데 나는 거기에 비하면 황제의 삶이니 그 아니 행복하겠는가?
아, 집이 정말 좋다. 아내가 참으로 좋다.
 
 

 

'제주 한 달 살이 그 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리는 꽃잎 속에 봄은 온다.  (0) 2024.03.28
열무 얼갈이 김치 담그기.  (1) 2024.03.26
오이 소박이 담그기  (1) 2024.03.22
큰손녀와 장기 두기  (0) 2024.03.13
막내 손자 유치원 입학식  (0) 202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