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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 달 살이

8월 11일(제주 26일차) - b : 제주 돌 문화 공원 (5)

by 눈떠! 2023. 8. 16.
8월 11일(제주 26일차) - b  제주 돌 문화 공원 (5)
3코스를 빠져 나와 2024년 개관을 목표로 공사 중에 있는 설문대할망 전시관 옆을 걸어 오백장군 갤러리 앞으로 왔다.
오백장군 갤러리에서는 '通,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 라는 기회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미 관람 시간인 6시가 지나 문이 닫혀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이번 기획전은 굿을 모든 예술의 원초적 뿌리이자 시원처로 여겼던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첨단 과학기술을 두루 융합한 ‘신기 넘치던 아방가르드 전자 무당’으로서의 예술 세계를 제주 굿과 접목시켜 재조명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돌문화 공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지나가다 들리는 개념으로 방문한 내 잘못을 후회하고 있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관람시간을 지키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은 원래 1코스 구간이지만 우리가 관람의 편의상 마지막으로 잡은 구간이었다.
이 구간은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에 얽힌 설화 내용을 이용해 오백장군 갤러리, 오백장군 군상, 오백장군 상징탑, 죽솥을 상징한 연못, 어머니의 방으로 형상화 한 곳이다.
제주에서 전해지는 설화에 의하면 한라산 서남쪽 산 중턱에 '영실'이라는 명승지가 있는데 이곳에는 기암절벽이 하늘 높이 솟아 있어서 이 바위들을 가리켜 오백나한 또는 오백장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백 장군은 설문대할망 의 아들로 어느 해 지독한 흉년이 들어 오백 형제 모두가 양식을 구하러 나간 사이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수 있는 죽을 끓이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 죽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오자 마자 죽을 먹었다.
나중에 돌아온 막내가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
 
막내는 어머니가 희생된 죽을 먹은 형들과는 더 이상 못 살겠다며 어머니를 애타게 외쳐 부르며 섬을 떠돌다 섬의 끝자락에서 제주도를 지키는 차귀도의 바위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부르며 울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는데 이것이 오백장군 이야기다.'
 
설화에 나오는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커다란 돌들이 길 한편에 늘어선 모습은 장관이었고 마지막에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돌을 전시한 어머니의 방을 역시 돌을 이용해 만들어 놓았다.
시간에 쫒겨 허겁지겁 출구로 나오니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아무도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 다시 오백장군 군상으로 돌아가 한바퀴를 돌고 나왔다.
주차장으로 오니 우리 차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구름이 두둥실 제주 돌문화공원의 돌과 같은 여러 모습으로 하늘을 수놓았다.
하귀 하나로 마트에 들려 양쪽 부모님, 형제들과 손주들에게 줄 제주 특산물 몇가지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내일 아침 8시에 차량 탁송을 위한 기사분이 숙소에 오기로 해 작은 가방을 제외한 모든 짐을 저녁에 실어 놓고 자기로 했다. 뒷트렁크와 좌석 아래에 짐들을 움직이지 않게 정리하고 아들과 마주 앉아 맥주 한 캔을 비우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
 
내일은 차가 없으니 숙소 주위를 걷거나 시내 버스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아들은 내일 아침 친구와 만나 하루를 지내고 저녁에 올라온다고 한다. 제주에서 두 밤을 보내면 여행기간에 큰 아들이 애써서 관리해준 새 집에 들어간다.
물론 도착하는 순간부터 쌓아 놓은 여러 짐을 정리하고 소파를 받고 세탁실에 들어갈 수 있는 세탁기를 새로 구입해야하는 일이 있지만 기대된다.
 
21년 만에 집을 고치고 묵은 짐들을 정리하고 버리긴 했지만 아직도 정들어 미련을 갖고 버리지 못한 짐들을 과김히 버리자고 다짐하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자질구레한 잡동사니, 책들, 옷들을 정리하자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아내와 앞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사면 옛 것을 반드시 처분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이제는 들이가보다 비우고 또 비울 나이가 되었다.
언젠가 떠나는 날 가볍게 훌훌 날아갈 몸과 마음의 준비를 지금부터 연습하고 실천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내일 아침 7시 20분에 알람을 맞춰 놓았다.
제주의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