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 한 달 살이

8월 12일( 제주 27일차) : 제주시 애월읍 번대동길 27 안녕!

by 눈떠! 2023. 8. 16.
8월 12일( 제주 27일차)
오늘도 구름이 끼었지만 날이 좋았다. 아내는 토스트에 커피로 아들은 커피로만 아침을 대신했다.
나는 라면을 반개 끓여 햇반 하나를 말아 김치를 반찬으로 맛있게 먹었다.
 
아침 8시에 차량 탁송기사분이 오셔서 차를 점검하고 인수해갔다.
차가 떠나자 이제 제주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모든 짐을 다 꾸려 보냈고 갈아 입을 옷과 세면도구만 챙겨 떠나면 된다.
작은 아들은 11시쯤 친구를 만나 자기들 여행을 즐기러 가방을 메고 숙소를 떠났다.
사실 멀리 가지도 않고 곽지 해수욕장에서 만나 놀다가 애월 해변가의 제주리조트에 숙소를 정했다고 한다.
숙소에서 1132번 도로를 건너 바닷가로 가는 중간쯤에 있는 곳이다.
아무튼 씩씩하게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서울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다시 우리 부부만 둘이 남았다.
아들이 며칠 같이 있다 떠나니 무언가 허전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 에어컨을 끄고 모든 문을 열어 둔 채 뒹굴거리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하늘과 잔디를 바라보고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오랫만에 한가한 시간을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3시쯤 되어 점저를 먹으러 지나번 제주에서 만난 제자 순*이가 소개해 준 한림읍 해안에 있는 고향 흑돼지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예약을 하러 홈페이지에 가보니 5시까지 브레이크타임 이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배가 고파 참을 수 없다고 해 애월 해안가의 식당을 가보자며 집을 나섰다.
도로를 건너 걷다가 금돈가라는 흙돼지 구이 집으로 들어갔다.
이 집도 애월 가문동 포구의 맛집으로 소개되는 집이었다. 가까운데 이런 곳을 두고 흙돼지 맛집을 찾았으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흙돼지 근고기 600g과 계란찜, 해물된장찌게, 공기밥 한그릇을 시켰다.
기본 찬이 나오고 직원이 직접 고기를 잘라가며 구워주었다.
계란찜과 해물 된장찌게도 나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아내는 맛있다며 상추쌈에 돼지고기를 싸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나랑 다니며 늘 배가 고팠다는 말이 생각나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내 그릇에 고기를 집어 줬다.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두다리 쭉 뻗고 누웠다.
나를 사랑해주는 아내가 옆에 있고 배부르며 뒹굴거릴 집이 있으니 세상 부러울게 없다.
아, 좋다.
 
잠시 후 아내가 여보! 일몰 하며 시간을 말했다.
7시 10분, 아마도 10분 안에 해가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어른 신을 신고 평상이 있는 두그루 나무 언덕으로 달려갔다.
가면서 보니 붉은 해가 구름에 걸려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무곁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니 수평선에 짙은 구름이 껴 해를 감춰버리는 바람에 일몰을 볼 수 없었다. 많이 아쉬웠다.
몸을 돌려보니 한라산도 구름으로 뒤덮여 자태를 완전히 감춰버렸다.
그래도 애월 번대동 마을 길은 아름다웠다.
돌담옆의 꽃들도, 나무들도, 허공에 매달린 거미도, 나태주 시인의 시비 뒤에 서있는 나무도 모두 정겹고 아름다웠다.
수산봉아 안녕!
아쉽지만 이렇게 제주의 마지막 날이 흘러갔다.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내일 6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9시 비행기니 이곳에서 7시에는 버스를 타야한다고 한다.
숙소 주인에게 좋은 곳에 잘 묵었다 간다고 문자를 보냈다.
숙소를 주선해준 동성 62회 제자 정호에게도 안부 문자가 왔다. 제자 덕분에 정말 아내와 신혼여행 온 것 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정호야 고맙다.
 
살아 있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고마운 일이다.
부모님, 형제들, 아들들, 새아가, 손주들 같은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 제자들, 직장 동료였던 선생님들, 전교조 동지들, 그리고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만나고 헤어진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이런 여행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옆에 서준 아내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
' 여보, 나의 금강산!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겁니다.
내 곁을 지켜 주어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