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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 달 살이

8월 13일(제주 28일차) : 집으로.

by 눈떠! 2023. 8. 16.
8월 13일(제주 28일차) : 집으로.
아침 6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구름이 잔뜩 끼어 회색빛으로 덮힌 하늘이지만 어김없이 태양은 떠오른다.
세수를 하고 아침 준비를 했다.
 
아내는 토스트와 커피를, 나는 남은 계란 두 개를 넣고 라면을 끓여 역시 마지막 남은 김치를 찬으로 먹었다.
이제 냉장고에는 삼다수 작은 생수가 여덟 병, 플레인 요거트 한 통이 남았을 뿐이다.
이것은 두고 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집 안 정리를 하고 가방을 쌌다.
어제 대부분의 짐을 차에 실어 보내 큰 짐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질구레한 작은 짐들이 한 가방 되었다.
세면도구, 아내와 내 옷가지 몇 벌, 충전기와 보조 배터리, 작은 화장 가방, 메모 노트 한권, 번대동 동네에서 만난 할머니께서 담에서 떼어 주신 다육이 중 아직 살아 있는 것 몇 잎을 비닐에 싸서 넣었다.
아내는 구워서 먹지 못한 토스트 한 조각도 가방에 넣었다.
집 주인에게 문자로 출발을 알린 후 집안을 한 번 둘러보고 분리 수거하기 위해 모아 놓은 비닐과 쓰레기 봉투를 들고 집을 나섰다.
 
한 달 동안 정들었던 정원의 담팔수야, 돌담들아, 안녕! 빨래 건조대를 고여 놓았던 돌들아, 잔디밭아 안녕!
예쁜 숙소의 창아 안녕!
우리 부부가 좋아했던 번대동 마을 나즈막한 언덕의 평상이 있는 두 그루 나무야 잘 있으렴.
수산봉아, 애월 바다야, 한라산아! 너희들도 모두 안녕!
 
집을 나서 한 달 동안 오르내리던 번대동 회관 앞길을 따라 내려와 버스 정류장에 갔다.
버스 정류장 바로 뒤에는 복덕방을 겸하는 피규어 파는 곳이 있다. 가게 앞에는 커다랗게 만들어 전시된 여러 케릭터 모형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아들에 따르면 그쪽 방면에서는 꽤나 알려진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1132번 해안 순환로 건너 아들이 친구와 묵고 있는 제주 리조트가 보인다.
한 달 동안 눈만 뜨면 보았던 애월 바다도 그대로다. 어제 일몰을 보러 올랐던 언덕에서 본 바다에는 조명등을 켠 한치잡이 배들이 떠 있었다.
 
7시 5분 정확하게 공항에 가는 316번 버스가 번대동 정류장에 도착했다.
한 시간여를 이곳 저곳을 빙빙 돌아 마침내 버스는 공항에 도착했다.
국내 탑승장인 삼층으로 올라가 발권을 했다.
탑승장 입구에 가니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서 있어 아들 말대로 생체 등록을 했다.
크게 버버거리지 않고 화면의 지시를 따라 생체 등록을 마치고 나가려고 가보니 줄 서있던 사람들이 다 나가고 그쪽도 비어 있어 조금 머쓱했다.
아내는 공연히 우리 정보를 공개한 것이 아닌가 했지만 다음에 또 비행기를 탈 때 편할거라고 위로했다.
 
탑승장에 면세점이 보여 아내에게 사고 싶은 것 있으면 사주겠고 했더니 에스티 로더 립스틱과 립밤을 사고 싶다고 해 매장으로 가 사주었다. 작은 것에 저토록 좋아하는 아내를 보면 그런 것 하나 제대로 못 해준 것이 미안해 공연히 마음이 쓸쓸해진다. 여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9시 10분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제 제주를 떠난다.
창밖으로 도두봉이 보이며 이륙했다.
 
창가 좌석이 아니어서 내가 가운데 앉고 아내를 복도 쪽에 앉게 했다.
이륙한지 정확하게 한 시간만에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찾을 짐이 없으니 바로 고항을 빠져 나와 공항 리무진에 올랐다.
이제 한 시간 후면 그동안 큰 아들이 돌봐준 새 집으로 들어간다.
 
자, 집으로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