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집으로 5일차)
집으로 온지 3일 만에 대강의 짐 정리가 끝났다.
짐 정리라야 수십년 살림을 주어진 가능한 공간에 아내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쌓고 눈에 띠지 않는 곳에 집어 넣는 일이다.
한 달전 이삿짐을 맡기면서 거의 반 이상의 짐을 버렸는데도 아직도 짐이 넘쳐난다.
옷이며 책이며 공구며 각종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정말 몰랐다.
내가 욕심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었다니 많이 부끄럽다.
장이며 서랍마다 물건이 넘쳐나고 심지어 책상 아래 구석구석 일단 쌓아 놓고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우여곡절 끝에 집수리를 끝내고 입주를 한 후 짐 정리에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좋아하니 일단은 대성공이다. 보이는 곳은 가능한 장식이 없이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게 하겠다는게 아내의 생각이다.
거실은 전보다 짐이 줄고 깨끗해졌다.
이사 전에 실내자전거를 당근마켓에 팔았고 손주들 책이 꽂혀 있던 협탁을 버리고 책도 정리해 볼 만한 것은 가져가고 나머지는 분리수거함에 넣어버렸다.
샤시를 새로 하면서 이중창을 굴곡없이 직선으로 만들고 바같쪽으로 화분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서 베란다를 트고 거실을 확장한 느낌이 살아났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화분이 제법 운치있다.
주방 옆 식탁 놓는 곳은 기대에 부응해 장식장이며 김치냉장고를 치우고 식탁과 청소기만 자리하게 했다. 한결 여유있고 편안한 공간이 되었다.
식탁도 6명이 앉을 수 있고 의자 2개를 더 놓으면 최대 8명이 사용할 수 있는 넓은 것으로 바꾸었다.
이곳은 식사뿐 아니라 주로 아내가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영어 공부도 하는 아내의 공간이다.
아주 만족해하니 좋은 일이다.
부엌 살림이야 아내의 몫이니 내가 참견할 여지가 없지만 부엌의 수납함에 있는 여러 물건을 시키는데로 정리하는 것은 내몫이다. 이번 집 수리를 하면서 나름 수납함을 이곳 저곳에 예쁘게 많이 만들어 밖으로 나도는 짐들이 없어져 깨끗해졌다.
화장실도 마침내 욕조를 뜯어내고 샤워부스를 설치했다. 넓어지고 깨끗해진 느낌이다.
세탁실은 괄목상대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획기적으로 변했다.
역시 이사짐을 맡기면서 공간만 차지하던 쌀통과 정들다 못해 한 식구라 할 수 있는 21년 된 세탁기와 김치냉장고, 아내가 결혼할 때 가지고 온 장식장을 모두 버렸다.
세탁실에 냉장고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돋우고 타일을 붙여 깔끔하게 고치고 기역자로 수납장을 짜 공간의 활용을 높였다.
새로 구입한 김치 냉장고와 세탁기를 들여 놓으니 완전 새아파트가 되었다.
물론 수납공간을 정리하는 일은 내몫이었지만 기분좋게 일 할 수 있었다. 특히나 부엌과 세탁실 사이의 미닫이 문을 떼어내고 출입구를 넓힌 후 새로 여닫이 문을 달았는데 집 공사중 가장 잘 된 곳 중 하나였다.
사실 여기에 있던 출입구가 좁아 아내가 원하던 세탁기를 넣을 수 가 없어 지난 번에는 분해해서 넣은 후 다시 조립했었다. 그런데 문을 넓히고 세탁기를 주문했는데도 삼성 택배 기사들이 좁아서 못 넣겠다며 반품을 해주겠다고 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프로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주 여행에 돌아와 내가 자로 재어보니 냉장고를 빼고 문을 떼어 내면서 아내가 원하는 새탁기가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새로 LG에 새탁기를 주문하고 배송전 날 한 30분 씨름을 한 후 중문을 떼어 놓았다.
다음 날 배송하러 와서 바로 집어 넣고 간 후 다시 냉장고를 옮기고 문을 달았다.
당연히 아내는 좋아라 하며 당신이 해결사라고 칭찬해줬다.
고래는 아니지만 아내가 칭찬하고 좋아한다면 무슨 일이든 못 하겠는가? 당연히 춤 춰야지.
사실 우리는 많은 경우 정말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믿어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이리 저리 생각해보고 궁리한다면 꽤나 많은 일들이 해결의 열쇠를 드러낸다.
문제는 새로 생긴 내 방이다.
실제로 나 혼자만의 방은 결혼 후 처음이다. 책장도 없고 이전에 쓰던 식탁을 옮겨 책상으로 쓰기로 했지만 기분은 좋다.
그런데 생각보다 방이 작아 붙박이장을 만들었더니 피아노와 책상으로 방이 꽉 찼다.
사실 책상을 넓게 쓰고 싶어 식탁을 버리지 않았는데 이것 저것 올려 놓다 보니 틈이 없었다.
작은 아들이 쓰던 데스크탑 컴퓨터를 먼지를 깨끗히 털어내고 정비를 했더니 CD리더를 제외하고 작동이 잘되고 있다.
퇴직을 하면서 구입한 중저가 노트북과 휴대폰과 연결하여 사용하니 제법 그럴듯 하다.
거실에 있던 라디오, CD플레이어, USB가 한꺼번에 붙어 있는 오디오 CD 플레이어를 가져다 모니터 밑에 놓고, 연필꽂이, 이단 서랍을 올려 놓았더니 책상이 넘쳐나지만 나는 대만족이다. 아내는 피아노가 있으니 들어와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당신 방이니 존중해준다고 하며 청소나 잘 하라고 한다.
책상 밑에도 갈 곳이 없는 운동기구와 나를 제외한 식구들이 보기에 어쩌면 쓰레기라 할만한 물건들이 그득하다. 아무튼 이곳은 내 영역이 되었다.
내방의 장농 안도 책상 밑과 거의 비슷하다.
아들과 아내의 옷을 넣은 곳을 제외한 중간 장에는 내게만 소중한 물건들로 그득하다. 운동기구들, 바둑판과 바둑알, 장기알, 운동복 심지어 효자손과 작은 아들이 버린다고 내놓은 공룡과 곤충, 파충류 피규어까지 정리해 상자에 담아 놓았다.
이제부터 매일 매일 버려야할 물건들을 골라내는 것이 어쩌면 제일 큰일이고 힘들 것이다.
내가 살아 온 세월이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무엇을 잘 사지도 않지만 내게 온 물건은 그것이 무엇이든( 책, 옷, 공구, 전선들, 심지어 허리띠, 연필과 볼펜등) 고쳐쓰고 또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으리란 생각으로 쉽게 버리질 못한다.
아내는 그것도 일종의 병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쉽게 고쳐지질 않는다.
더 솔직한 심정은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진심이다.
참으로 대단한 욕심이다.
이렇게 한 주간이 정리를 하며 훌쩍 지나갔다.
물론 집정리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일요일 돌아와서 부터 어머니 돌 본 것이 제일 큰일 이었다.
여기저기 아프시고 기운이 없으시다고 해 다음날 부터 동네의 내과, 방사선과와 정형외과, 그리고 큰 병원인 서울대 병원 안과, 고려대 병원 소화기 내과에 진료를 받으러 모시고 다녔다.
우리나라 병원은 진료보다 주차장부터 진료받기까지 기다림의 연속이고 진료는 간단히다.
동네건 대학 병원이건 우리 나라 병원은 인내심을 기르는 도장이라고 할 만하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많기도 많다.
왜 의사 정원을 늘리지 않는건지 모르겠다.
그 분들은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받아서일까?
의사를 늘리지 않을 거라면 국회에서 접수한 순서대로 진료를 받지 않으면 감옥에 가게 법을 제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예약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되게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이제부터는 정리한 것을 다시 정리할 정말 중요한 일이 남았다. 옷이나 책같은 것 뿐만 아니라 내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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