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6일(연중 제6주일)
날이 조금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겨울이라 쌀쌀하다.
휴대폰 보며 꾸물대다 급하게 세수하고 옷 대충 입고 어머니 댁으로 차를 몰았다.
늘 그랬듯이 아파트 현관 입구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일요일에 성당에 가서 주일미사를 드리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성스런 의식이다. 참으로 굳센 신앙심이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나까지 주일 미사를 거르지 않고 참례하니 고맙기도 하고 가끔은 귀찮기도 하다.
어머니가 아니면 아마도 주일 미사를 꽤 많이 걸렸을 것이다.
오늘 성당 입구에는 유난히 많은 레지오 단원들이 주보를 나눠주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요즘 레지오 단원들이 많이 줄어들어 해체되는 쁘레시디움이 많다고 하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중엔 아버님 살아계셨을 때 함께 활동하시던 낯이 익은 분도 계셔 가볍게 목례를 드렸다.
성당 뒷편 책꽃이에서 성가책을 뽑아 들고 늘 앉는 가운데 오른편 앞에서 세 번째 자리 어머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도착하면 제단을 중심으로 성당 정면과 제대 앞 꽃 장식을 촬영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새벽 미사에 참여하며 생긴 버릇이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그날의 의미를 살려 정성껏 장식된 제대 앞을 꾸민 꽃꽂이가 그냥 지나치기에 아까워서 시작된 버릇이다.
이어서 미사 안내 하시는 분의 안내에 따라 성당에 온 시자들이 오늘의 복음을 함께 읽고 잠깐 묵상한 후 일어나 삼종기도를 바치고 입당송과 함께 신부님이 입장하셔서 제대 앞으로 오르시면 미사가 시작 된다.
오늘 복음 발씀은 루가 복음 6.17 .20-26 의 행복한 사람들과 부행한 사람들에 관한 말씀이었다.
사람들은 행복해 지려고 온 힘을 다해 노력하며 살지만 진짜 행복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면 행복해질까 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신부님께서는 강론에서 금화 한 잎을 가진 사람과 아흔 아홉 닢을 가진 사람 중 누가 행복할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그리고는 한 닢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할거라며 그 이유를 설명하셨다.
아흔 아홉을 가진 사람은 한 닢을 더 채워 백잎이 되어야 행복해 질겠지만 한 닢을 가진 사람은 그 한 잎을 소중히 여기고 자체로 만족할 가능성이 더 높기 대문이라고 하셨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지만 내 짧은 생각에 행복을 느끼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 만큼 그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 답은 사람 수 만큼 있을 수 있다.
정말 다행인 것은 하느님께서 절대적인 행복의 기준을 정해 놓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말씀하시길 살면서 가끔은 아래쪽을 보거라 하셨다.
위를 보며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부족한 쪽을 보며 이만하면 얼마나 좋은가를 느끼라고 하셨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고마워 할 수 있는 마음도 소중한 것이다.
행복하려면 꼭데기의 열매를 얻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발 밑의 이름 모를 풀꽃들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사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면 도처에서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내 좁은 소견이다.
행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주님도 그러신게 아닐까? 지금 누리는 것이 부족하다면 나아질 희망이 있으니 행복하라고 하셨고, 지금 충분히 누리면 그것을 겸손되이 바라보라고 불행하다고 말씀하신게 아닐까 한다.
더 나아가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고 있다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누라고 그리 말씀하신 것 같다.
세상은 저 혼자서 만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이 변할 수 없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성당 전면의 고상 오른편에 걸린 대희년 프랭카드에 "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라는 로마서 5장 5절의 말슴이 걸려 있다.
나는 그 희망이 우리를 아니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더디더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내 행복의 바탕이다. 희망이 있기에 주변을 돌아볼 수 있고 희망이 있기에 소소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꿈을,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될거야라는 희망이 지금의 나를 인정할 수 있게 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나를 행복하게 이끈다.
주님!
살면서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게 하소서.
살아서 행복하고 또 언젠가 다가올 죽음조차도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저를 붙들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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