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처형부부가 첫 면회를 하시고 미국으로 가신 후 지난 주 형님 부부의 면회에 이어 우리 부부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아내의 형제 육남매가 주말 마다 돌아가며 면회를 하기로 했으니 미국으로 가신 처형을 제외하면 5주에 한 번 꼴이다.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에는 3주에 한번 처가에 들려 집안 청소며 주방을 정리하고 가져간 소고기를 구워드린 후 목욕탕에 가서 함께 목욕하고 반월 호숫가의 메밀 막국수 집에 들려 막국수를 먹고 집에 모셔다 드린 후 귀가했었다.
두분이 요양원에 들어가시고 난 후 우리부부는 오히려 많이 편해져서 조금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장인 어른과 장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줄어들은 것이 사실이다.
첫 면회니 만큼 요양원 주변 공원이며 맛집, 그리고 전망 좋은 카페를 찾아봤다.
11시까지 요양원에 도착해 오후 4시까지 맛있는 점심과 지루해 하지 않으시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동선 을 짜봤다.
계획은 화담 숲 근처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한 후 화담 숲에 입장해 산책을 하고 차를 타고 팔당호 주변 카페에 가서 한강을 바라보며 케익과 달콤한 라테를 사드리고 요양원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10시 50분 요양원에 도착해 주차를 하는 동안 아내가 면회 신청을 했다.
잠시 후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이층에서 내려오셨다. 장모님께서는 아내를 보더니 너무 반가워 소리를 지르시기까지 하셨다.
눈물을 글썽이며 포옹을 하고 요양원 앞 정원의 벤취에 앉아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잠시 마음을 추스렸다.
정원에 토끼풀 꽃이 많이 피어 있어 두 송이를 따 장모님 손에 꽃반지를 만들어 드렸다. 환하게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차를 타고 화담 숲 근처 한정식 집으로 가려고 나오는데 아버님께서 너희들이 오면 안양시장의 소머리국밥집에 가서 소머리국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마침 차창 밖으로 이화옥 명품한우 소머리국밥집이 보였다. 좀 더 가 유턴을 해 국밥집에 차를 주차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이어서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키오스크 메뉴판에서 아버님은 소머리국밥 특과 수육 한접시, 어머님은 한방사골탕 특, 아내는 곰탕, 나는 냉콩국수를 시켰다.
기본찬이 깔리고 이어서 수육접시가 나오니 아버님께서 맛있게 드셨다.
요양원에 오니 집에 있을 때 너희들이 와서 구어주던 소고기 생각이 나셨다며 잘 드셨다. 이어서 나머지 음식들이 나왔다.
장모님께서 도가니를 조금 드시더니 썩 좋아하시는 것 같지 않아 콩국수를 접시에 담아 드셔보라 했더니 맛있다고 하셔서 그릇째 다드리고 내가 도가니탕을 먹기로 했다. 한방이라더니 한약 냄새가 나서 드시기 불편했었나보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점심식사를 마쳤다.
아버님께서는 고기로 배를 채웠다며 아주 잘 먹었다며 만족해하셨고 어머님도 콩국수를 국물까지 싹싹 비우시며 흡족해 하셨다.
차에 올라 화담숲은 생략하고 인터넷에서 찾아 본 팔당호 주변 카페인 더쉼 이라는 곳으로 갔다.
차량 네비에는 잡히지 않아 카카오맵을 켜고 갔다. 경기도 광주시내를 관통해 한 4-50분 쯤 걸려 카페에 도착했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카페 본관을 지나 강변의 파라솔을 펴논 곳으로 가니 북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가변 가까이 자리를 잡고 앉으니 두 분이 몹시나 좋아하셨다. 특히 장모님께서 좋아하셨다.
이게 웬일이냐며 민물이냐고 몇 번을 물어 보셨다. 아마도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자라 큰 물을 보면 바다가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장인 어른께서 옆에서 민물이라고 몇 번씩 대답해주셨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드넓은 강물이 펼쳐지고 백로가 날으니 경치는 정말 좋았다.
잠시 후 아내가 주문을 마치고 자리로 와 음료와 케익을 받아 오라고 했다.
카페 본 건물에 가서 아내가 주문 한 차와 케익을 받아왔다.
카페라떼 3잔, 유자차 한잔, 초코가 입혀진 케익 한 조각, 그리고 모카 빵 두 개를 잔다밭을 걸어 테이블까지 날랐다.
카페에는 나이 지긋한 사장님과 조금은 자폐가 있는듯 한 장애를 가진 젊은이 한 사람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젊은이가 친절하게 음료를 함께 날라주었다. 장모님께서 케익이 맛있다며 유자차와 함께 아주 잘 드셨다.
장인 어른께서는 서울에 처음 오셨을 때 젊은 시절이야기며 살아오면서 좋았던 기억을 더듬어 이런 저런 추억들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요양원 생활이 밖에 못나가고 갇혀있으니 조금은 답답하지만 그래도 안전하니 견딜만하다고 하시며 자식들이 많이 보고싶다고 하셨다. 장모님도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셔서 이제는 그곳이 집이라고 말씀드리고 매 주 자식들이 돌아가며 찾아와 두 분과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아내는 아버님께 헌금하시라며 집에서 준비해 온 돈봉투를 드리고 가방을 뒤져 지갑에 들어 있던 현금과 동전을 모두 어머님께 드렸다. 아버님도 좋아하셨지만 장모님께서 꼭 설날 세뱃돈 받는 어린아이처럼 정말 좋아하셨다.
어르신들께서 요양원 안에서 돈을 쓸일이 없겠지만 장난감인양 가지고 계시면서 좋아하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인가보다. 아내는 올 때마다 용돈을 조금이라도 드려야겠다고 했다.
그것으로 집을 떠난 마음의 허전함이 작게라도 메꾸어진다면 그것도 참 좋은 생각이라고 말해줬다.
차를 마시고 빵을 먹고나서 정원에서 꽃구경도하고 그네도 타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에게도 곧 다가올 두 분의 시간을 지켜보며 조금은 마음이 서늘해졌지만 주어진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너그럽고 평화롭게 욕심부리지 말고 웃으며 살기도 아까운 시간이 아니던가?
아무리 길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삼분의 일 정도 남은 시간들을 담담히 기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한다고 마음 먹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차를 타고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 처음 앉았던 요양원 건물 옆 작은 정원 벤취로 갔다.
정원의 토끼풀 꽃을 뜯어 중간에 끊어진 꽃반지를 다시 만들어 드렸다. 그리고 내친김에 꽃팔찌와 꽃목걸이, 꽃 헤어밴드까지 만들어 채워드렸다. 장모님께선 환한 미소로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여섯밤을 자고 나면 처제들이 순서대로 부모님을 만나러 올 것이고 또 다시 우리 부부도 뵈러 올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식사 잘 하시고 건강하고 재미있게 지내시라고 했다.
요양원 안으로 들어가 직원들에게 잘 다녀왔노라고 말하고 두 분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시며 장모님께서는 머리 위로 팔을 올려 하트를 만드셨다.
아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갈 때 부모님을 만나면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지, 다시 요양원으로 들어 가실 때 잘 가실지 걱정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잘 보냈다며 당신이 함께 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