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의 사전적 의미는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차려 정성을 표하는 의식. 이라고 나와 있다.
나에게 제사란 할아버지, 아버지에게서 돌아가신 조상님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내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려서부터 일가 친척의 대소사에 집안의 장손으로 많은 분들의 관심과 존중을 받아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모를 집안에 대한 책임감이 내게는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적어도 제사를 내가 모시고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은 확실히 각인되었다. 철들며 제사 준비를 하고 음식을 진설하고 지방을 쓰며 절을 하는 동안 무언가 모를 엄숙함과 가문이라는 무게가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나는 한번도 조상으로부터 이어온 내 존재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살아왔다. 커다란 무엇을 이루진 못했을 망정 조상에 누를 끼지지는 말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삶의 기준을 잡았다. 집안 어른들을 존중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동생들과 우애있게 지내고자 노력했다. 아이들에게도 내가 느낀 것들을 이어가도록 행동으로 보이려고 했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크게 맛나지도 않은 장만하기 힘든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드느라 아내는 시집온 이래 많은 고생을 했다. 그나마 할아버지께서 5대 봉사를 3대로 줄였지만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처음 대하는 제사에 많이 당황하고 힘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설, 추석까지 합하면 무려 8번의 제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고 더구나 대부분 겨울에 돌아가셔서 음력 11월 부터 설차례를 지내기까지는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음식 장만에 손님 접대까지 생각하면 눈코 뜰 새 없이 많은 일들을 해내야 했으니 참으로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 아닌가.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제사를 지내는 일은 여전히 쉬운일이 아니다.
며칠 전 증조 할아버지 기일 연도를 드렸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는 전통적인 제사를 지내느라 작은아버지 두 분, 동생 가족들이 모여 현관에 신발이 가득차기도 했다. 하루 전부터 모여 음식을 장만하느라 집안이 분주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옛 방식을 바꿔 가톨릭 제례인 연도를 드리기로 하시고는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수고로움이 줄었다. 그러나 모이는 대식구를 먹이기 위해 아내는 여전히 음식 장만을 했지만 제사 음식 장만하기보다는 마음도 가볍고 일도 줄어 좋아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들께서 돌아가시고 다들 세상살이에 바쁘며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모이기도 힘들어져 요즘은 단촐하게 모였다.
그래도 4대가 모여 함께 연도를 드렸다.
어머니, 우리 부부, 자식들, 그리고 손주들까지. 큰손녀가 향을 사르고, 손주들이 대표로 증조부께 절을 한 후 , 다함께 성가를 부르고, 올 해 초딩이 된 큰손녀는 성경을 봉독하였으며, 성인 호칭기도까지 들어간 긴 연도를 어린 손주들이 잘 참아주니 참으로 대견하고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모두 절을 하는 것으로 연도를 마쳤다.
조상을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 아이들은 어떻게 알아갈까?
형제는 아버지가 같고, 사촌은 같은 할아버지의 후손이라는 것을 이해하길 기원한다. 그리고 서로 돕고 아끼고 살아가길.
증조 할아버지.
어머니, 저희들과 자식들, 그리고 제 손주들을 굽어보시고 모두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윤예지, 함경민, 외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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