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3일 (다해) 연중 제 15주일.
5시 45분. 전화 벨 소리에 눈을 떴다.
요즘 날이 너무 더워 안방이 아닌 거실에서 자다 오늘은 결혼을 하고 나간 작은 아들 침대에서 잠을 자다 깨다 반복하다 5시 20분 알람을 듣지 못하고 어머니가 거신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부랴부랴 옷을 걸치고 차를 몰아 어머니 아파트 출입구로 가니 이미 나오셔서 한참을 기다린 눈치다.
피곤한가 보구나 하시는 말에 아무런 대꾸없이 성당으로 향했다.
참으로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간다. 지난 주 새벽 미사드린지 얼마나 됐다고 또 주일이 왔다.
어머니 모시고 새벽미사 다닌지 2년이 가까워 오지만 아직도 나는 효도(?) 차원이지 진실한 신앙인으로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미사 드리러 성당 가는 것이 기쁘기보다는 그저 습관적이고 오히려 가끔은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튼 세월이 쏜살같이 흐르고 주일이 정말 빠르게 되돌아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성당 앞자리에 자리잡고 미사드리기 죄송스러울 뿐이다.
오늘 복음 말씀은 루카 10,25-37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말씀이었다.
율법교사의 질문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스스로 대답하게 하시곤 다시 이어지는 누가 이웃이냐는 질문에 이 비유를 말씀하신다. 비유에 등장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당한 유다인을 이웃이라고 생각했고, 또 강도를 당한 유다인에게 사마리아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이웃이었다. 사랑하여야할 이웃은 어떤 사람이고 그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여야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비유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항상 나는 어떻게 이웃을 대하고 또 나를 이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느냐이다.
돌아보면 이웃은 커녕 어머니 모시고 성당가는 것조차 힘들어하며 무슨 이웃타령인지 부끄럽다.
이웃은 커녕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의지하고 내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에게도 툴툴대며 유세를 떨며 살고 있으면서 무슨 이웃까지.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며 마지막에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하고 이르신다.
더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가족에게, 그리고 이웃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일을 행동으로 실천해야하는 것이 신앙인의 당연한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강도를 당한 유다인의 동족인 사제나 레위인과 다를 바가 없음이 분명하다.
가족이며 친구, 이웃에게 행동으로 증명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산다는 것은 그것도 잘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 늘 내가 이웃되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남들이 내 이웃이 되길 바라고 내가 가족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도 하기 힘들어하며 나는 가족으로서 대접받고 배려받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조금만 소홀히 대접받는 것 같아도 노여워하며 투덜대고 원망한다.
창 밖으로 올려다 보니 하늘은 구름이 끼어 있지만 비가 올것 같지는 않고 오늘도 무척이나 더울 것 같다.
오늘 하루 나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어떻게 내가 가족이며 이웃임을 실천할 수 있으려나 벌써 마음이 무겁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주님!
모자란 제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발끝만큼이라도 따라가는 가족으로 또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작은 것이라도 기쁘게 실천하고 행복해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 주소서.
주님께서 제 마음을 움직이신다면 아마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그림자라도 밟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멘.

착한 사마리아인 (빈센트 반 고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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