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펼쳐보이기

다*이와 효*이를 서울역 근처에서 만났다.

눈떠! 2025. 7. 16. 13:34
지난 7월 3일 6시 구 서울역 광장의 강우규 의사 동상 앞에서 2018년 졸업한 동성고 제자인 다*이와 효*이를 만났다.
퇴직하기 전에도 가끔 학교로 찾아와 주던 졸업생들이었지만 퇴직하고 난 후에도 전화로 카톡으로 연락을 주더니 선생님 뵙고 싶다고 상계동 집 근처로 오겠다고 했다 집안 일로 약속을 미뤘다 이날 만나기로 했다. 다*이는 마지막 학기가 남은 학생이지만 효*이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직장 근처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 구서울역 광장 강우규 의사 동상이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이리저리 돌아 서울역 광장으로 올라갔다.
흰구름 두둥실 떠있는 파란 가을 하늘 같았는데 역광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강우규 의사 동상 발치에는 노숙자 서너명이 지친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고 광장 여기저기에도 노숙자들이 보였다.
저 사람들은 어떤 가슴 아픈 사연을 가슴에 안고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잠시 그 사람들을 바라보며 쓸쓸한 기분에 젖어들 때 다*빈이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오랫만에 한 번 꼭 안아줬다.
서울역은 겉모습은 70년 초반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변함이 없었지만 지금은 내부를 개조해 미술관으로 여러 전시를 하고 있다고 다*이가 알려주며 효*이 올 때까지 시원하게 관람을 하시겠냐고 했다.
 
마침 100주년 기념으로 "우리들의 낙원"이라는 주제로 21명의 작가가 VR, 설치, 사진, 영상, 회화, 미디어 아트, 인공지능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1층 첫번째 방의 미디어 아트 작품을 전시하는 방으로 들어가 스튜디오 레논에서 만든 금강산을 모티브로한 진경산수화에 관한 비디오 작품을 감상하였다. 커나란 전시장의 한쪽 벽면과 바닥까지 스크린으로 활용해 7대의 줌으로 영상을 쏘아 하나의 산수화를 구현해낸 작품이었다. 산속에 들어와 실제와 허구의 오가며 금강산의 사계절의 경치를 보는 듯 했다.
시원한 곳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을 보고 듣자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다음 전시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마침 효*이 에게서 곧 약속 장소에 도착할 것이라는 전화가 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강우규 의사 동상 앞으로 오니 곧 효*이가 도착해 반갑게 인사하고 꼭 안아줬다.
내게서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보통 학교 다니면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어도 나와 허그하는 것이 비교적 일상적이어서 졸업하고 나서도 나를 만나면 쫓아와 포옹한다. 심지어 내가 가만히 있으면 "선생님 안아 주세요." 하고 먼저 다가온다.
인사를 나눈 후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며 드시고 싶은게 없냐고 물었다. 나야 뭐든지 잘 먹으니 너희들 자주 가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효*이 회사가 근처에 있으니 효*이가 그러면 자기가 자주 곳으로 가서 고기를 드시면 어떠냐고 해 그러자고 하고 식당으로 갔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와본 서울역 앞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40년전 대학시절 여름방학이면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이곳에서 호남선 비둘기호를 타고 대천에 있는 학생수련관으로 하계수련회를 떠났었다. 사박오일 먹을 음식과 매일 저녁 캠프 화이어할 장작까지 기차에 싣고 왁자지껄 여행을 떠났었다. 그시절 선, 후배들의 얼굴과 오늘 만난 제자들보다 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세월은 정말 쏜살같고 유수와 같이 흐른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추억을 더듬으며 따라 걷다보니 음식점에 도착했다.
상호는 생각나지 않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로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꽤 잘되는 집인것 같았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이미 옆자리에는 한 잔씩 걸쳐 거나해진 직장인들의 대화소리가 귀를 때렸다.
기본 찬들이 나오고 고기와 소주와 맥주 한병씩 나와 내가 소맥을 말아 한 잔씩 돌린 후 건배를 했다.
학교 다닐 때 추억을 잠깐 나누고는 두 아이의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돈을 벌며 세상을 살아가야할 이야기를.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다*이는 한 학기가 남았는데 작은 회사지만 이미 취직을 했다고하며 그 회사를 발판으로 더 큰 세상으로 날아오를 생각이라고한다. 학교 다니면서 이미 많은 공모전에 입상했고 늘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자신가이 넘친다.
효*이는 철학을 전공하고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이번에 일본 회사에 스카웃되어 내년 삼월부터 일본에 가서 근무한다고 한다. 주택을 제공받기로 계약했다며 이월쯤 일본에 간다고 한다.   
두 아이는 틈나는대로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고 하며 여행지 사진을 보여줬다.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각 나라를 다니면서 자신이 좋았던 곳을 신이 나서 설명해 줬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답게 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살길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삶을 마음껏 즐기며 행복하게 살길바란다.그게 이 아이들에게 펼쳐진 삶이길 기원한다.
 
고기와 술을 마음껏 먹고 마시고 후식으로 나는 비빔냉면, 아이들은 김치국수로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왔다.
효*이가 식대를 계산했다. 아이들이 학교다닐 때는 나를 만나러 오면 학교 근처 식당에서 아이들 밥을 사주곤 했는데 이제 아이들이 자라 취직을 하니 거꾸로 내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곤한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게 선생한 보람인가 싶기도 하고.
식사후 근처의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겨 차를 한 잔 사준다고하니 좋아했다.
아이들은 내가 모르는 이상한(?) 이름의 무언가를 주문했고 나는 젊음의 전유물이라는 아아를 주문했다.
아이들은 신이나서 여자친구, 여행, 앞으로 기대되는 삶의 이런저런 추억과 꿈을 이야기했다.
웃고 떠들다보니 시간이금방 지나갔다. 서울역 지하철로 다시 와서 포옹을 하고 아이들은 1호선, 공항철도로 들어가고 나는 4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두 아이들이 준 선물을 양 손에 들고.
 
퇴직한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이들은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내 삶속에 깊이 연결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것도 동성고등학교에서 평생 수학을 가르쳤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꿈같은 일이었다.
좋은 아이들과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화살처럼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아! 행복하다.
 
(사족)
아이들과 헤어지며 집으로 오는 도중 주고받은 카톡
 
나이 든 선생을 기억하고 불러 내 맛있는 고기 사주며 선물까지 안겨주는 제자가 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사실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라고 또 자신의 몫을 하더구나.
선생이란 아이들이 스스로 커갈 때 켵에 있어주는 사람일 뿐이다.
다*이도 효*이도 정말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구나.
너희들은 오늘 내게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너희들 자신을 커다란 선물로 주었단다. 고맙고 고맙다.
늘 자신을 믿고 스스로를 의지하고 서두르지말고 꾸준히 너희들의 꿈을 향해 나아가거라.
모교와 친구들을 기억하고 힘내거라.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마.
 
선생님 오늘 바쁜신데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늘 너무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었고 오랜만에 선생님 뵈서 행복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보내주신 따뜻한 메시지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오늘의 만남은 제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저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일 뿐이라고 하셨지만, 선생님을 떠올릴 때마다, 그리고 오늘처럼 직접 뵙고 말씀을 나눌 때마다 저는 늘 새로운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언제나 큰 힘이 되고 길을 밝혀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은 제게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근시일내에 꼭 다시 한번 찾아뵙고 담소 나누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해주신 조언처럼 늘 자신을 믿고 꾸준히 나아가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어린 제자 둘과 어울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