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노통.
떠나가신 후로 책상 서랍 밑에 끼워 놓았던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정리했다.
이제는 마음에 담아두어야겠지.
2014년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이리로 옮긴다.
작은 아들이 함께 영화구경을 하고 싶다며 심야 영화로 변호인을 예매해왔다.
자기는 이미 봤는데 아버지도 보면 좋아할 것 같아 한 번 더 보기로 했단다.
12시 넘는 시간임에도 극장안은 만원이었다.
10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이미 보았다 하고 감동적이고 눈물짓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만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담담했다.
아니 무어라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나름 감수성이 둔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대를 함께 살아서 아니 지금도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되지 않아서인지 공연히 서글퍼졌다고나 할까.
1978년 변호인이 고시에 합격한 해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그 시대를 함께 산 많은 사람들이 술 한잔 들어가면 자신의 젊어서 민주화 운동 무용담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렇게 떠들 무용담 한자락 없이 살아서인지 지금도 부끄러움을 안고 산다.
영화에 나오는 불온서적을 나도 읽긴했지만 개인적인 독서로 그것으로부터 치열한 삶의, 민주주의에 대한 깨달음을 끄집어내지 못한 혼자만의 독서로 끝났다.
의식화 근처에도 가보지못한 내 모자람 탓이니 같은 시대를 살어오면서 지금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광화문 세종로 종로 서울역을 다니며 80년대를 관통하는 최류탄 냄새를 맡긴했어도 별다른 고통과 희생이 없이 얻었으니 내 권리를 구속당해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잘 모른다고나 할까.
그래도 노통이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도 선한 인간에 대한 나 자신의 부끄러움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고 조금만 시류에 영합하면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그것을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 자신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공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게 사실이다.
남 이야기할 것 없이 당장 나를 돌아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쪼잔한지를 깨닫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추
운 뒤에나 소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항상 모자란 사람은 사랑이 지나간 후에 그리워 한다.
이제야 소맥 한 잔과 교무실 책상 유리 밑에 끼워 둔 밀집모자 속의 환한 미소로 노통을 기억하는 것이 고작 내 그리움을 달래는 방법이다.
견디기 힘들었겠지만 우리 곁에 살아있었다면 지금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이 팍팍한 세상에 한 하늘을 이고 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힘이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친구들, 아이들이 있지만 그들 못지않게 또다른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있다.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지만 뜻을 같이 하는 이름 모르는 많은 이들이다.
연대하고 함께 모이는 이들, 아마도 노통은 그런 사람들의 중심이되어 주었을 것이다.
물론 생사를 떠나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긴 잊지 않고 가억하는한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니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라고 위로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크다.
언제가 세월이 흘러 오늘을 이야기하며 웃을 날이 오면 그 때에는 진짜 그리움이 더 짙어져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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