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펼쳐보이기

빗길 산책

눈떠! 2023. 5. 28. 22:00
비가 와도 우리는 우산 쓰고 중랑천변 산책길을 걸으러 나간다.
 
의정부 초입까지 왕복 10km 정도를 2시간 남짓 우산 하나를 쓰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며 듣는 빗소리는 집안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집안에 누워서 듣거나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창밖을 바라보며 듣는 빗소리도 나름 운치가 있고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 일으키지만 우산 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훨씬 생동감을 준다.
우선 시시각각 변하는 빗줄기에 따라 머리 위를 두드리는 소리의 크기와 리듬이 다르고 눈 앞에 내리는 비의 모습이 수시로 변하며 마음을 자극하는 정도가 다르다.
더불어 서서히 신발을 적시며 발에 전해지는 빗물의 축축한 느낌도 빗속을 걸어야만 알 수 있는 비밀이다.
 
어제는 7시쯤 나간 덕분에 산책길에 거의 사람이 없어 그 넓고 긴 길을 오롯이 우리만의 걸음으로 채웠지만 오늘은 조금 일찍 나가서 꽤나 많은 사람들과 길을 나누어 가졌다.
하나 다른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인 일 우산이었는데 우리만 하나의 우산을 나누어 쓴 가난한 연인 역을 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아무리 빗줄기가 거세도 우산을 따로 쓰려 하지 않는다.
우산이 아무리 커도 서로의 반쪽이 젖을 확률이 크지만 젖은 반쪽과 젖지 않은 반쪽이 우리가 함께라는 것을 더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그 많은 우산을 두고 하나만 가지고 집을 나선다.
 
수락산과 도봉산은 구름에 가려져 봉우리가 보이지 않으며 신비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중랑천은 평소보다 불어난 물로 소리를 높여 흘러간다.
뚝방을 덮은 금계국과 이름 모를 풀들은 빗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꽃들이 고개를 숙인 그 모습이 길을 걷는 우리에게 예를 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비가 그치면 저 꽃들은 다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환호할 것이다. 바람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아름다운 춤을 추며 길을 걷는 우리를 향해 응원을 보내 줄 것이다.
비가 와도, 햇볕이 비추어도, 구름이 세상에 그늘을 만들어도, 달이 함께 걸어도 우리는 이 길을 걷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우리의 일상을 나누며 이 길을 걷는다.
하루 중 많은 시간 붙어 있으며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많은 것들을 함께 보고 듣지만 다르게 느끼는 것들을 나누며 이 길을 걷는다.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함께 우산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함께 공간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비와 우산과 신발과 한쪽이 젖은 옷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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