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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2구간을 걷고(2021년 5월 30일)

눈떠! 2021. 6. 23. 08:21

서울 둘레길 2구간.

 

아침 6시 30분 화랑대역에서 출발하여 6시간에 걸쳐 둘레길을 기준으로 약간 우회하며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을 돌아 광나루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이름난 사람들과 이름모를 사람들의 공동묘지 무덤 사이로 난길을 걸으며 무덤보다는 활짝 핀 금계국과 들꽃들에 눈을 주고, 직박구리, 뻐꾸기, 까마귀, 까치와 이름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으로 귀호강을 했다.

초록의 향연인 숲길을 다정한 친구와 그리운 추억과 현재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기대를 나누며 걸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양지바른 무덤 한쪽 옆 공터 잔디에 앉아 위스키 한잔, 김밥 한 줄과 컵라면, 그리고 후식으로 커피 한잔을 나누었다.

옆의 무덤 주인에게도 편안하시라고 축원하며 술 한모금 부어드렸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햇볕과 그보다 더 훈훈하고 푸근한 우정을 만끽하며 근사한 아침을 먹으니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살아있다는 당연함이 무덤들 가운데를 걸으니 더 크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용마산 깔닥고개를 올라 바라보는 동북부 서울은 망우산 무덤들보다 더 복잡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파트로 뒤덮여 있다.

서울 근교 산에 올라 내려볼 때마다 느끼는 집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어떻게 우리 집은 없을까라고 아내와 마주보고 슬픈 미소를 나누던 신혼 시절이 떠오른다.

30년 아끼고 절약하며 주택부금 갚느라 고생한 아내의 모습이 파도같이 밀려오는 저 아파트 위로 겹쳐진다.

지난 세월 물질이 부족했어도 행복하게 살아온 것은 모두 아내의 공이다.

가난한 선생과 결혼해 부모님 모시고 형제들 거두며 자식들 잘 키운 내 아내. 가슴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눌러 담고 살았을까를 생각해보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온 몸을 휩싸고 돈다.

여보 고맙고 고마워. 내가 느끼는 이 모든 행복은 모두 당신덕이야.

 

우리나라 산마다 품고 있는 깔닥고개라는 곳을 지날 때면 또 아내가 떠오른다.

여유롭지 못한 사정으로 방학을 휴가 한번 못가고 아이들 데리고 뒷산인 수락산 주변 소풍으로 보내던 젊은 시절, 수락산 주변만 돌지말고 정상을 가보자고 깔닥고개를 오르다 갑자기 아내가 못 올라간다며 뒤도 돌아보지않고 내려가버렸다.

집에 와 왜 그랬냐 물으니 당신은 쉬지도 않고 맛난 간식은 커녕 물도 마실 틈도 없이 오르는데 미쳐버릴 것 같았다며 다시는 나를 따라 집을 나서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다.

집에 있으면 때는 거르지 않고 과자라도 먹을 수 있다며.

그 후 어디를 가든 아내의 눈치를 살피게 됐다.

적당한 휴식과 적당한 간식, 그리고 때되면 밥을 챙기는 훌륭한(?) 남편이 되려고 지금도 노력한다.

참으로 나는 당연한 것을 당연히 해주지 않는 남편이었다.

왜 나는 길을 나서면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쉬지 않고 걸었을까?

 

아차산에 이르면 굽이 돌아 흐르는 한강과 산들 그리고 강변을 따라 자리잡은 강남, 북의 현대적인 풍경들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역시나 수많은 집들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나도 저사람들 중 하나이지만 참으로 사람들은 대단하다 못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야! 많기도 많다. 다들 뭐하며 무엇을 바라고 살까?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수락산 중턱에서 그 많은 아파트 숲을 바라보며 " 참으로 사람들이 대단하구나. 저 많은 것들이 다 집이고 저 안에 사람들이 사는구나. 저 사람들이 다 무얼하며 살꼬? 이걸 못보고 죽었으면 한이 될 뻔 했다" 라던 말씀이 귓가를 울린다.

지금도 할머니 궁금증에 대답을 못하겠다. 아뭏튼 엄청나게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산해서 뼈해장국집에 마주 앉아 소맥 한잔을 나누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안주삼아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다.

세상 사는 모든 이야기를 마음 상하지 않고 주고 받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친구가 있음으로 세상살이가 얼마나 더 풍요롭고 행복한가? 친구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다.

우리들의 둘레길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저녁마다 아내와 걷는 중랑천변 산책, 손 꼭 잡고 다녀왔다.

함께 살아 온 날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지금과 함께 온기를 나누며 살아갈 내일을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