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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첫 동성고 방문

눈떠! 2023. 2. 26. 14:10
퇴임식 후 처음 동성학교에 다녀왔다.
 
94년 5월 상계동에 이사 온 후 30년 넘게 다닌 길이 뭔가 묘한 기분으로 다가왔다. 신호등에 걸려 멈출 때, 차선을 바꾸고 회전을 할 때,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 유턴을 할 때, 차단기가 내려진 교문을 들어설 때 감회가 새로웠다. 차에서 내려 수위 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종교관 언덕을 올라 정원을 지나 운동장에 주차를 했다.
 
차에서 내리니 테니스 코트에서 게임을 하시던 선생님들이 인사를 건네 왔다. 퇴임하신지 몇 년 된 정인화선생님, 그리고 노동석 선생님, 노형제선생님, 이형선생님, 박재상선생님, 홍종현선생님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모두들 보고싶고 그리운 얼굴들이다. 인화형은 조금 마르긴했지만 건강해 보였고 다른 선생님들도 밝은 모습이었다.
 
전교조 해직사태를 겪으며 중학교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인화형과 지낸 시절이 떠올랐다.
서로의 수업을 참관하며, 아이들 모아 뛰어 놀고, 집회에 따라다니며 교사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배웠다.
정인화 선생님은 내 교사로서의 삶에 가장 크고 좋은 영향을 준 선배교사이자 동료 선생님, 그리고 옆자리를 지켜 준 동지다.
전교조가 탄압받던 시절 서울의 여러 대학에서, 최류탄 냄새를 맡으며 치렀던 교사대회에서 전교조 조합가인 참교육의 함성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동지가를 부를 때 인화형은 늘 옆에 서 있었다. 선생님을 할 때도 퇴직을 한 후에도 학교밖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 주는 참선생님 인화형.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고집하지 않지만 아이들과 올바른 교사로서의 삶을 위해서라면 단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태산같은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나마 나쁜 선생이 되지 않고 정년퇴직을 한 것의 99%는 인화형과 또 인화형 못지않게 올곧고 착한 후배 교사들 덕분이다.
 
선생님들께선 내게도 게임을 해보라며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모든 운동 경기가 그렇지만 잘 하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특히 네트를 중심으로 하는 경기는 더 그렇다. 아슬아슬한 랠리가 오래 계속될수록 재미있고 빠져들며 운동 효과도 커지고 심지어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흥이 난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실력 차이가 나면 게임이 자주 중단되고 긴박감이 없어져 경기를 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도 집중도가 떨어지고 운동 효과도 반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함께 해주는 것은 동료 교사를 배려하는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인화형은 니가 와서 좋다며 이제는 나보다 못치는 사람이 있으니 오히려 재미있겠다고 빨리 나오라고 했다.
홍선생님과 노형재 선생님께서 한편이 되고 인화형과 내가 한편이 되어서 게임을 시작했다.
상대편이 조금 살살 치고 인화형의 친절한 잔소리 덕분에 5:5로 게임을 마쳤다.
일년에 몇 번 치는 테니스니 오죽했겠냐마는 그래도 웃으며 공을 받아주는 동료가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세상살이도 이렇게 조금 부족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와주며 함께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해 주고 또 원한다면 부족한 사람들이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점심 시간이 되어 밥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이렇게 왔는데 한 게임 더 하라고 떠밀다시피 권해 한번더 신세를 졌다.
오랫만에 하는 운동이라 숨도 차고 기분좋게 땀도 흘렸다.
확실히 걷고 뛰는 것과는 또 다른 부위를 사용하니 몸도 좋아했을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세상 최고의 보약이 아닌가 한다.
선생님들이 간단히 샤워를 하는 동안 학교를 한 번 돌이보고 기다렸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청산 손만두에 들러 모두들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만두 전골을 먹으니 신선이 부럽지 않았다.
선생들이 모여 앉으니 학교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그리고 테니스 이야기 집이야기를 하며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토요일 아침에 운동하러 또 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행복하게 집으로 향했다.
 
평생 나를 품어준 동성고등학교.
그리고 시간을 나누어주신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또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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