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펼쳐보이기

가방 메고 시장 따라가기

눈떠! 2023. 3. 4. 09:35
여보! 시장 갑시다.
 
 
아침 먹고 잠시 쉬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가방을 둘러 매고 따라 나섰다.
주공 16단지 아파트를 가로 질러 애플 마트에 갔다.
순두부 1kg 짜리 2봉지, 튀김 가루 500g 한봉지를 가방에 담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노브랜드에 갔다.
그곳에서 갈릭 요거트 500g 5개를 사서 넣고 나왔다.
노브랜드에서는 우유, 요거트, 치즈같은 유제품, 여러 종류의 빵, 훈제 오리, 각종 차와 커피같은 것들이 싸고 애플마트는 과일과 야채, 두부, 각종 밀가루와 짜장, 카레 가루, 청량 음료류가 싸다.
나라면 한 곳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살텐데 아내는 동네 모든 마트와 상점, 노점의 특성을 꿰고 종류에 따라 여러 곳에서 물건을 산다.
 
 
다시 16단지를 가로질러 돌아와 농협은행 옆의 재래시장에 갔다.
재래 시장은 각종 야채와 과일, 계란을 파는 가게다.
청년들 몇몇이 매일 매일 청과시장에서 물건을 떼어다 그날 그날 모두 팔아 넘기는 가게여서 물건이 싸고 싱싱하다.
우리 동네에는 동일로를 사이에 두고 주공 12단지와 주공 11단지 앞 빌딩들을 중심으로 커다란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각 단지 양쪽 끝에 재래시장같이 청과물이나, 생선도 함께 파는 가게가 4개 있는데 가게 주인들의 성격에 따라 주력 물건이 조금씩 다르고 가격도 다르다. 아내는 그것도 꿰고 있어 가끔은 네 곳을 순례한다.
재래시장에서 계란 두판, 냉이 세 봉지, 표고 버섯 한 봉지, 호박 고구마 한 봉지를 사 가방에 넣었다.
아내는 재래시장에서 나와 농협은행 옆 노점을 하는 할머니에게서 파래 한상자를 검은 봉지에 담아 들었다.
 
 
7호선 마들역과 버스 정류장이 있는 이곳에는 길 양쪽의 빌딩에 모든 시중은행과 모든 과의 의원과 약국, 초중고 보습학원, 하나로마트, 롯데슈퍼, 편의점, 핸드폰 가게, 제과점, 푸줏간, 술집을 제외한 각종 음식점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건물 사이와 도로 변에 각종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도 많이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노점도 있고 나물 몇 종류, 노인들이나 신을 법한 신발과 슬리퍼 몇 켤레, 양말, 붕어빵과 어묵, 호떡, 집안에서 쓰는 잡다한 일용품들을 펼쳐 놓은 노점들이 시골장처럼 펼쳐져 있다.
아내는 그 모든 상점과 노점들이 갖고 있는 특징과 주인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적절히 활용한다.
나는 아내의 뒤를 따라 동네를 한바퀴 순례하며 산 물건을 정리하여 가방에 넣는다.
아내는 메모도 없이 중복되지 않게 재료를 사서 식사 준비를 한다.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초능력이다.
 
 
장 본 물건들을 지고 들고 집으로 돌아와 계란과 요거트를 냉장고에 정리하는 동안 아내는 벌써 파래전을 뚝딱 부치고 냉이 된장국을 끓여 먹어보라고 내민다.
파래를 깨끗히 씻어 부침가루와 섞어 후라이펜에 기름을 두르고 얇게 부쳐냈다.
고소하고 상큼한 바다 내음이 입안을 가득채운다.
냉이 된장국은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우려낸 후, 냉이, 표고 버섯과 두부를 약간 작게 썰고 된장을 풀어 끓였단다.
냉이향에서 봄이 입안에 퍼진다.
아내의 손끝에서 뚝닥 만들어진 음식으로 상위에 바다와 봄이 어우러진다.
그리고 저녁에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라며 파래 부침 한 장을 부쳐 먹기 좋게 썰어 통에 넣어 포장해 주었다.
늘 무언가 만들면 어머니 몫을 따로 챙겨 포장해 놓는다. 나는 그저 심부름을 한다.
 
오늘도 하루가 보람차고 바쁘게 지나간다.
퇴직을 하면 시간이 가지 않아 무료하다는데 얼마나 바쁜지 피아노 칠 시간도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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