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에 호열이가 아내와 함께 집 앞으로 차를 가지고 왔다.
지난 주 선생님 퇴직도 하셨으니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며 약속을 잡았었다.
자기가 몇 번 가 본 좋은 식당이 있으니 모시겠다고 하며 시간을 비워두라고 했었다.
호열이는 85년 동성에 부임해와 87년에 두번째 담임으로 만난 아이니 지금은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다.
그리고 제자이기도 하지만 ROTC 후배이기도 하다.
수업 시간에 군대 이야기를 하면 졸다 가도 번쩍 눈을 뜨는 남학생들이어서 내가 겪은 군대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 중에는 ROTC로 군복무를 한 학생들이 여럿 있다.
그 아이들은 후보생 시절이나 군복무 할 때 학교에 들리면 나를 찾아와 거수경례를 "선생님 저는 ##기 입니다 " 하곤 했다. 내가 20기이고 호열이는 31기라고 하니 11년 후배인 셈이다.
내가 군 생활을 계속해서 군에서 만났다면 중대장이나 대대 참모와 소대장으로 만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호열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매년 거르지 않고 소식을 전하며 5월이면 꼭 들려서 식사 대접을 하곤 했다. 담임을 하면서 특별히 신경을 써주거나 잘 대해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잊지 않고 기억해 주며 고마워하니 오히려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세상 살기가 힘들고 어려울텐데도 선생을 찾아주는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한편으로는 나도 선생 노릇을 잘 하기도 했나 하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아이들을 가르쳐 교문을 내보낼 때면 뒤돌아보지 말고 훨훨 날아가 자신들의 꿈을 활짝 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게 주는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끔 아이들이 학교에 찾아와 옛날 이야기를 하면 선생 생활이 공연히 더 신나고 으쓱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아이들이 찾아오면 후배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라며 수업 시간에 교실로 데리고 들어가기도 했다.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은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고 집중을 한다.
어떤 아이는 자기도 나중에 선생님을 찾아와 후배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고 하기도 하고, 실제로 후배들에게 주려고 아르바이트를 해 아이스크림을 사오기도 했다.
호열이는 집 앞까지 와 나를 차에 태우고 광주시 퇴촌면의 맛집이라는 소리마을 전주 한정식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강원도 산골 깡 촌놈이라 어려서부터 멀미를 심하게 했다.
강원도 고향 마을에는 승용차는 물론 버스 구경도 가뭄에 콩 나듯이 할 수 있었고 차 라고는 군인들이 타는 지프나 석탄을 싣고 다니는 트럭이 다였지만 나는 경유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띵하고 울렁거렸었다.
어쩌다 버스를 타면 속이 뒤집혀 위를 깨끗하게 비우고 바닥을 더렵히기 일쑤였다.
차를 멈추고 내려서 토하기도 했다.
서울에 전학 와서도 차를 타고 가는 소풍이면 즐거움이 일도 없었다.
그런데 대중교통에 지하철을 주로 타고 내가 운전을 하면서 수 십 년 멀미를 잊고 살았는데 심지어 최근에는 다른 선생님 차를 얻어 타고 다닐 때도 그런데로 잘 다녔는데 어제는 그렇지 못했다.
의정부 톨게이트로 들어가 구리 쯤 지나면서 차가 막히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하며 어지럽고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퇴촌의 식당 앞에 도착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제가 공연히 너무 멀리 모셨군요. 하며 걱정하는 호열이에게 미안하여 얼굴 들기가 민망했다.
식당에 들어가 그 집에서 제일 비싸고 푸짐한 정식을 주문하여 한 상 가득 나왔는데 맛있게 잘 먹질 못해 너무나 미안했다.
불고기에 간장 게장, 양념 게장이 푸짐하게 나왔고 온갖 봄 나물에 구수한 된장 찌게며 전라도 밥상이 식탁 가득 한 상 차려졌는데 밥 한 그릇을 제대로 비우질 못했다.
평소라면 체면 불구하고 공기 밥 한 그릇 더 먹을 그런 상차림이었는데 말이다.
정성껏 이 곳까지 모셔와 맛난 점심을 사주는 호열이가 오히려 미안해 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참으로 미안하고 미안한 것이 선생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조금 진정이 되자 걸어서 옆에 있는 빵굽는 정원이라는 카페 겸 빵집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식당 바로 옆 넓은 터에 자리 잡은 빵집이 있었다.
마침 날씨가 좋은 화창한 봄날이고 바람도 차지 않아 야외에 자리를 잡고 않았다.
커피와 맛있게 갓 구운 빵을 들고 와 자리에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며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커피도 향기롭고 빵도 맛있었으며 봄 햇살이 부드러워 참 좋았다.
이순이 훌쩍 넘어 함께 늙어가는 제자의 대접을 받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는 감상에 젖어 들었다.
부드러운 햇살과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나를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 이게 선생하는 맛이지.
세상 그 누가 이런 기분을 알 수 있을까 싶었다.
다행히 오는 길은 막히질 않았고 앞자리에 앉으라며 호열이 아내가 양보를 해줘서 수월하게 집으로 올 수 있었다.
물론 조금은 울렁거렸지만. 호열이는 맛있는 식사와 북한강 변으로 멋진 드라이브를 시켜주며 내내 미안해 했다.
선생님 다음에는 가까운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하면서.
호열아 고맙다.
늘 건강하고 네 집안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하마.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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