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펼쳐보이기

동생과 함께 칼바위 능선 등반.

눈떠! 2023. 4. 13. 11:24
동생과 삼각산을 올랐다.
 
내 동생은 시인이자 도시농부다.
성심여고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다 나보다 몇년 먼저 퇴직을 하고 퇴직하기 전에 아파트를 탈출해 인수동 단독주택으로 귀촌(?)을 해 집과 옥상에 꽃과 나무, 야채를 기른다.
오늘 동생과 함께 화계사를 시작으로 삼성암을 들러서 범골, 냉골을 지나 칼바위능선을 타고 문필봉을 거쳐 북한산성에 올랐다. 산성을 따라 대동문을 나와 구천폭포 계곡을 따라 통일연수원으로 내려와 다시 북한산 둘레길(흰구름길) 3구간을 걸어 화계사로 돌아왔다.
산길 24000보를 걸었다.
 
동생은 시인이며 도시농부이고 호밀빵, 귀리빵을 굽는 제빵가이다.
국어선생님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시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시인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시를 써보는 것보다 더 좋은 시 수업이 어디 있겠는가?
내 동생이어서인지 나는 그의 시가 참 좋다. 간결하고 적당히 절제된 언어로 어렵지않게 쓴 동생의 시를 읊노라면 동생의 감성이 느껴진다.
테오는 그림을 그리는 고흐를 형으로 두었지만 나는 시를 쓰는 동생과 아들을 가졌으니 내가 테오보다 적어도 두배 더 행복한 사람이다. 더구나 내가 아는 두 시인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좋은 선생님이었고 지금 선생님이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우리는 10시에 수유역 3번 출구에서 만났다.
화계사 입구까지 버스를 타나 걸으나 시간이 비슷하게 걸린다고 해서 걷기로 했다.
수유역 사거리를 벗어나니 오래된 옛날 동네의 모습이 나타났다.
동생에게 동네의 오래된 음식점이며 교회, 성당, 학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화계사에 당도했다.
화계사는 그 동안 들은 명성에 비해서는 작은 절이지만 국제포교원이 있는 우리나라보다 외국에 더 많이 알려진 절이라고한다. 특히나 젊은 학승들이 많고 신학생들이 체험활동을 하러 오기도 한다고 한다.
화계사 못 미쳐 사거리에는 송암교회라는 장로교회와 수유1동 성당이 있고 한신대 신학대학원이 있으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세 종교가 모여 있는데 종교간 사이가 좋다고 한다. 세 곳에서 모두 점심 무료 급식을 하기도 해서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고 하며 웃었다. 천주교 신자인 동생은 송암교회와 화계사를 좋은 이웃이라며 칭찬했다.
 
화계사 옆으로 난 계곡길을 따라 삼성암까지 스님들이 다니는 길을 지났다.
이 계곡길은 화계사 소유의 길이어서 주로 스님들과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고 했다.
호젓하고 두 절을 잇는 길이어서 오대산 상원사와 월정사를 잇는 선재길 생각이 났다. 선재길처럼 알려진 유명한 길이 아니고 작은 계곡의 좁은 길이었지만 평일의 사람없는 길을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걸으니 마음이 푸근했다.
동생은 책을 많이 읽어서 아는 것이 많고, 국어 선생님들 특유의 입담으로 이야기도 재미있게 해 걷는내내 지루할 틈이 없이 재미있었다.
화계사 뒷길에는 미륵불이 있었고 그 아래 작은 약수터도 있었다. 부처님 자리 아래로 나오는 저 약수는 무슨 신통력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오늘 지나온 두 절의 대웅전은 모두 닫혀 있어 부처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이름모를 스님의 독경소리와 범종소리를 들으며 산을 올랐으니 그 또한 호사스런 산행이었다.
 
삼성암을 지나 범골을 따라 오르다 냉골로 접어들어 칼바위 능선을 올랐다. 칼바위 능선으로 오르는 곳으로는 빨래골, 범골, 냉골의 세 골짜기가 있는데 빨래골은 삼각산 동쪽 골짜기에 수량이 풍부하고 물이 맑아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고 인근 주민의 쉼터와 빨래터로 이용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대궐의 궁중 무수리들도 빨래터와 휴식처로 이용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그리고 범골은 말 그대로 호랑이가 출몰하던 골짜기이고 오른쪽 냉골은 역시 말그대로 여름에도 서늘하고 바람이 차서 냉골이라고 한다.
이름값을 하느라 그런지 집 뒷산인 수락산에는 며칠 전 비로 진달래가 다 떨어졌는데 이곳은 온 골짜기 가득 붉게 물들어 한창이었다. 특히나 칼바위 능선으로 오르는 바위 틈과 대동문에서 통일연수원으로 내려오는 계곡의 절벽에는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모습이 의연하기까지 했다.
꽃들이 모두 바람을 등지고 힘차게 연분홍 빛으로 바위를 물들이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래 저렇게 살아야지. 저 끈기와 살고자 하는 투지가 없다면 어찌 저리도 아름다운 색깔의 꽃을 피울 수 있으랴.
치열하고 온 힘을 다해 사는 삶만이 낼 수 있는 색들이 예쁜 꽃으로 피어나는 것 같다.
냉골의 기운은 진달래뿐 아니라 산벚나무에도 꽃이 그대로 달려있게 하는 마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칼바위 능선은 이름 그대로 험준한 바윗길이었다.
비록 긴 능선이 아니지만 이름 값을 했다.
지금은 안전을 위해 특히 위험한 곳에는 철재 난간을 설치해 놓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을 정도였다. 문필봉에 올라 한바퀴 빙 돌아가며 사람사는 세상과 인수봉과 도봉산을 둘러 보았다.
난간에 의지해 기다시피 능선을 가다 조금 안전한 곳에서 동생과 인수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이 언제였던가 가물가물하다. 예전에는 모이면 사진을 찍었는데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오히려 인물 사진을 덜 찍는 것 같다.
둘의 모습에서도 세월의 흔적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래도 꽃봉우리 같은 젊은 아이들을 가르치던 퇴직 교사들이라 또래보다는 젊어 보인다고 하느데도 나이를 속일 수 없었다. 더구나 연초록 푸르른 신록과 진달래꽃, 산 벚꽃 사이에서 어떻게 세월을 감출 수 있겠는가? 담담히 우리의 세월을 인정하고 나이값을 잘 하는 것이 옳게 사는 길임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능선 끝의 북한산성 벽을 넘어 성안으로 들어 갔다.
성벽을 따라 잘 다듬어진 산책길을 따라 대동문에 도달하니 문루를 모두 해체하고 보수 공사 중에 있었다. 칼바위 능선에서도 외국인 젊은이들을 여럿 보았는데 이곳에서도 젊은 외국인들이 길가에 걸터앉아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삼각산이 국제적으로도 알려졌고 등반을 위해 서울에 여행을 오기도 한다더니 실제로 삼각산에 올 때 마다 심심잖게 서양사람들을 만난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살 만한 나라가 된 것을 일상에서도 여러가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대동문을 지나 쉼터를 찾아 돌식탁을 가운데 두고 나무 의자에 앉아 간단히 요기를 했다.
동생은 직접 구은 귀리빵을 싸오고 나는 오이 두개와 내가 삶은 계란과 요그르트, 그리고 포켓용 200ml 참이슬 한 병을 꺼내 놓았다.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특히 아이들 잘 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도 남은 삶을 욕심을 내려 놓고 너그럽게 잘 살아보자고 했다.
 
대동문을 지나 아카데미 하우스 지금은 통일 연수원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왔다.
구천폭포 밑의 사릉 채석장을 지나며 흩어져 있는 돌들을 보고는 운명이 뭘까를 생각해봤다. 이곳에서 캐낸 돌들 중 어떤 것은 왕릉을 장식하는 석물이 되었고 어떤 것은 여기에 남겨져 굴러 다니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느 쪽이 더 좋을까를 따지기가 어렵겠지만 우리네 삶의 여러 순간에도 저런 순간들이 있고 그 순간들의 집합체가 지금 자신의 현실이 아닐까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곳에 어떤 모습으로 있던 그곳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찾고 원하는 방향으로 한걸음씩 옮겨 가야한다는 것이다.
 
4.19 국립묘지 쪽으로 내려오다 방향을 틀어 흰구름길을 걸어 화계사쪽으로 가기로 했다.
통일연수원을 지나 언덕을 오르는 초입에 연리지가 있었다. 두 나무가 무슨 인연으로 서로 하나로 이어지는 것을 연리지라하고 모자의 지극한 사랑이나 남녀간 깊은 인연의 애절한 사랑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통상의 연리지는 나무 중간이 연결도는데 이곳의 연리지는 뿌리 부분이 연결되어 있어 신기했다.
나와 아내도 나무로 태어났다면 연리지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레길 중간쯤에 목조 지장보살상으로 알려진 본원정사라는 또 하나의 절이 보였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불 사이인 부처님 없는 시대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대비보살이다.
특히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에 들어가 교화해 제도하는 보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지옥이 텅 비지 않는다면 결코 성불을 서두르지 않겠나이다. 그리하여 육도의 중생이 다 제도되면 깨달음(菩提)을 이루리다.” 라고 서약을 했다고 한다. 이는‘한시바삐 성불하여 부처님과 같은 거룩한 모습을 갖추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상이 다할 때까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고 그들을 남김없이 해탈케 한 다음 부처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장보살의 서원은 서원(誓願) 중의 서원, 가장 근본이 되는 원으로 모든 보살과 부처가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본원(本願)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80년대에 이 절의 주지 소임을 맡았던 원성스님이 본원정사로 절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참으로 고귀한 이름이다.
 
선생을 하면서 수업 중 지루해하는 아이들에게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우리 이름은 그냥 짓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 또는 가문의 소망을 담아 고귀하게 만들어 부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자기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고 친구들의 이름을 소중하게 불러 주자고 하며 몇몇 아이들의 이름을 나름대로 풀이해주기도 했다.
 
다시 화개사 앞으로 돌아와 동네에서 오래된 순대국집을 찾았다.
그런데 2시에서 4시까지 쉬는 시간이어서 근처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20분 정도 기다렸다.
마침 중학교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이어서 아이들 구경을 했다.
근처에는 수유 중학교와 화계중학교 그리고 혜화동에서 이사온 혜화여고가 있었다.
두 형제가 모두 선생을 천직으로 알고 살던 사람들이어서 당연히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아이들은 모두 예쁘고 건강해 보였는데 한결같이 교복이 아닌 체육복 차림이었다.
동생이 하는 말이 요즘아이들은 입학식과 졸업식 때만 교복을 입는 것 같다며 복장을 단정히 갖춰 입는 것도 학교에서 꼭 가르쳐야 할 일이라고 했다. 편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인 태도와 격식을 갖추는 것도 살아가며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교복은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의 표현이자 결심이라며 자사고나 명문고 아이들은 나름 교복을 잘 입고 다닌다고 한다. 동생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마음을 다잡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의지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장치가 필요하며 그것은 외적으로 바른 태도와 복장으로 드러난다고 나도 생각한다. 조금의 불편함을 견디고 지키는 일은 더 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자산이 되다고 믿는다. 세상에 거져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이 되어 둘레길 순대국집에 첫 손님으로 들어가 순대국 특 과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순대국이 나오기 전에 한 잔씩 그득하게 채워 들이켰다. 시원하고 달았다.
형제간에 마주 앉아 술잔을 들어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벌초를 가거나 명절 외에는 함께 술잔을 부딪친 기억이 없다. 앞으로는 가끔 만나 형제 간의 우의를 다져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막걸리에 김치 한 조각이어도 동생과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순대국 특에는 머릿고기들이 풍성했고 국물도 구수해 밥 한그릇을 말아 맛있게 먹었다.
오랫만에 동생과 마주앉아 먹는 늦은 점심은 세상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는 한끼였다.
미세먼지가 심한 것이 옥에 티였지만 좋은 경치에 맛있는 식사를 반주 곁들여 먹고 여유있게 즐길 수 있으니 참으로 즐거운 하루였다.
 
평생 고등학교 선생으로 같은 길을 걸어 왔고 나이들어 함께 걷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생이 가까이 살고 있으니 이 또한 행복한 일이 아닌가.
다음을 기약하고 동생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랫만의 등산으로 다리도 아프고 몸도 뻑적지근 했지만 마음만은 가볍고 흥겨웠다.
내 동생 상국아. 즐겁고 행복했고 순대국밥 맛있게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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