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교사 트레킹

동성고 퇴직교사 북한산 둘레길 걷기 두번째.

눈떠! 2023. 5. 21. 22:23

2023.5.18.

아침 10시 불광역에서 반갑게 선생님들을 만났다.
우리가 10시에 약속을 정한 것은 퇴직해 노는데 일하러 가는 출근길 직장인들을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오늘 노원역에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충무로역까지 가는 길은 옛날 만원버스를 방불케했다.
이러다 압사사고 나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나는 약속 시간을 바꾸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즘 직장은 몇시까지 출근을 하나 궁금증이 들었다.
그렇게 환승을 하며 불광역에 도착하니 유선생님께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준비해서 건내주셨다.
커피를 마시며 큰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북한산 둘레길 7구간인 옛성길이 시작되는 북한산 생태공원 상단에 도착했다.
우리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우리같은 퇴직자들도 보였고 부자간 모자간으로 보이는 여러 가족팀들도 보였다. 옆에 계신 분께 부탁하여 출발 사진을 한장 찍고 산행을 시작했다.
 
옛성길은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능선에 올라서니 전망대가 있어 족두리봉을 시작으로 북한산 줄기들이 한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날이 많이 더워졌지만 길가에 애기똥풀꽃, 찔레꽃, 아카시아꽃과 이름 모를 많은 야생화들이 피어나고 제법 무성하게 들풀들이 자라고 짙은 녹색으로 나무들이 치장을 끝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초록은 언제 보아도 눈을 편하게 마늘어 주고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심호흡 한 번으로도 근심걱정이 날아가는 느낌이다.
파란 하늘 흰구름으로 숲속을 걸어요 라는 동요가 저절로 흥얼거려져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퇴직 교사들이니 역시 아이들 이야기, 학교 이야기와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 소식을 나누며 걷다 김선생님의 안내로 일행이 앉아 쉴 수 있는 편안한 넓적바위에서 간식을 나누었다.
각자가 싸온 간식을 다 꺼내려니 너무 많아 간단히 반만 먹고 다음 휴식처에서 먹기로 했다.
김선생님께서 청와대 만찬주라는 이화백주 막걸리를 정성스럽게 얼음에 싸서 가지고 오셨다.
한컵씩 그득하게 따라 드리키니 참으로 신선이 부럽지 않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바위에 앉아 좋은 사람들과 마주보고 마시는 막걸리라니 이보다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게는가?
 
다시 걸음을 옮겨 탕춘대성 암문을 지나 6구간인 평창마을길에 접어들었다.
평창동은 알려진대로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부촌이다. 단독주택들이 북한산 자락에 넓직넓직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저 커다란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기도 했다.
그런 집에 살아보질 않았으니 집들이 너무 커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대학시절 동아리 친구의 친구집에 가본 기억이 떠올랐다. 우연히 몇 번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인데 하루는 자기집에 가서 이차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이곳처럼 언덕을 올라가 커다란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늙수그레한 분이 나오더니 도련님오셨어요 하면 문을 열어주었다.
계단을 올라 넓은 정원을 지나 커다란 저택으로 들어가 이층에 친구 방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주머니께서 술상을 봐오셨는데 당시 우리로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OB맥주가 두박스나 들어왔다.
얼마후 화장실을 물으니 그냥 베란다에서 싸자며 모두 바지를 내리고 함께 오줌을 눈 기억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내게 대학은 공부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삶의 모습들을 경험하게 해 준 굉장한 놀이터였었다.
 
꽤 많은 시간을 넓고 큰 집들 사이로 걸어 구경을 하고 형제봉 입구에서 5구간 명상길로 접어들었다.
숲길을 따라 걷다 자리를 잡고 앉아 남은 간식들을 먹었다.
삶은 계란 한알과 오이를 안주 삼아 문선생님께서 선물하신 포켓용 스텐술병과 200ml 참이슬 병에 담아간 스카치블루 21년산 위스키를 한잔씩 나누어 마셨다. 이 술은 군에서 장교로 근무하는 제자가 퇴직한다고 선물한 술이다.
선생님들과 함께 숲속에서 마셨다면 그 아이도 무척이나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 고맙다 얘야.
 
명상길은 비교적 짧아 바로 정릉 청수장 버스 종점으로 내려왔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그래도 헤어지는 아쉬움에 계곡 가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두부김치와 김치찌게를 안주삼아 막걸리와 소주 한잔을 나누었다.
함께 걷고 술 한 잔 나누며 이야기할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한 직장에서 10년 혹은 36년을 함께 하며 나를 견뎌주고 나이들어 퇴직하고도 만나주는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산다는 것의 목표가 결국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결국 행복을 나눌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고 귀한 존재다.
바로 가족, 친구다. 그것도 오랜 시간을 함께해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된다.
아무런 이해타산없이 자연스럽게 나를 받아주고 내가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편히 쉴 수 있는 집과 가족, 걸을 수 있는 건강, 숲과 친구들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행복한 삶이라 생각한다.
내게 그런 것들이 허락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고 고맙다.
 
내사랑 금강산 경숙씨,
내 사랑하는 아이들 경덕아,지영아, 성덕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손주 재아, 재서, 재민아!
그리고 어머니.
친구들, 선생님들,
나를 거쳐간 동성의 아이들아!
모두들에게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고 주님의 평화와 은총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