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5일(목)
한 달만에 보는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다.
문선생님께서 문자를 보내주셨다.
"내일은 인왕산 답사 제2탄으로...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유명한 석파정에서 출발하여 윤동주 문학관, 초소책방, 숲속쉼터, 수성동계곡을 둘러보고 서촌으로 내려와서 박노수 미술관과 홍건익 가옥을 둘러보고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 있는 <체부동 잔치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 ^^ "
10시 30분에 석파정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날 길찾기를 해보니 약속 장소까지 가는데 한시간 십분 정도 걸린다고 해 7시에 일어나 씻고 가방을 챙기고 라면을 끓여 아침을 먹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청소기를 들고 집안을 한바퀴 돌았다.
9시에 집을 나섰다.
다음 길찾기에서 집앞에서 석파정까지 버스 두 번 환승해서 1시간 4분 정도 걸린다고 해 여유가 있게 나섰다.
결과는 완전 패착이었다. 아파트 앞 버스 정류장에서 7번을 타고 도봉산역으로 가서 직행 110번을 환승하려고 보니 다음 버스까지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 종로 2가로 가는 일반 버스 150번을 탔다. 그런데 이 버스의 속도가 문제였다.
10시 20분쯤에 종로 2가에 도착했다. 다시 지선 버스7212를 갈아 타고 윤동주 문학관에 도착하니 11시가 다 되었다.
선생님들께서는 이미 도착하셔서 문학관을 둘러보고 계셨다.
문학관 벽에 윤동주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우리 집에 있는 것도 있어 반가웠다.
문학관 가운데에는 우물이 있었고 유리벽에 자화상이 적혀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건물 안 전시 공간에 마련된 우물 모형 속에는 자신을 비춰볼 물이 없을테고 그나마 유리벽으로 막아 놓아 우물안을 들여다 볼 수도 없었다. 윤동주의 시는 우리 시대에 그렇게 박제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서글픔이 스쳤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도 서시를, 별 헤는 밤을 읽어 보긴 하겠지.
고등학교 시절 박인희씨가 낭송하는 "별 헤는 밤"을 우연히 듣고 윤동주 시집을 사러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가서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한국시문학대계 8권 이육사, 윤동주를 시작으로 소월, 유치환, 서정주, 한용운 등 시집을 사 모았었다.
물론 별 헤는밤은 외워서 혼자 조용히 읊조려 보곤 했다.
문학관을 나오니 비가 진눈개비로 변했다. 길을 따라 조금 걷다 숲속 쉼터에 잠간 들렸다가 초소 책방으로 향했다.
초소 책방 카페 일층 창가 자리에 둘러 앉아 문선생님께서 사주신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2층 베란다의 투명 비닐로 만든 텐트에 자리를 잡았다.
6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휴대용 포켓병에 담아온 연태고량주와 노르웨이산 독주를 나눠 마시며 담소를 즐겼다.
건강,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동성학교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등 다양한 주제로 웃음을 나누었다.
쉼터를 나서니 눈발이 더 거세져 시야가 흐려져 남산이며 서울시내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수성동 계곡으로 내려올 때는 한겨울을 연상시키는 함박눈이 내려 겸재 정선의 그림인 '수성동'이 떠오를만큼 아름다웠다.
이 일대에서 나고 자란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것으로, 수성동을 비롯한 북악산과 인왕산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그린 그림을 모은 《장동팔경첩》에 실려있다.
그림속의 돌다리인 기린교(麒麟橋)도 복원하여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세월이 유수같이 흘렀어도 산천은 의구하다라는 말이 이곳에는 아직 유효했다.
지금은 바로 아래에까지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있지만 옛날엔 이곳이 바로 선경에 해당했을 것 같았다.
계곡을 벗어나 조금 내려오니 윤동주 시인이 묵었던 하숙집 터가 나왔다.
슬프게도 당연히(?) 그 집은 사라지고 시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이곳에서 연희전문까지 걸어 다녔을 시인을 잠시 떠올려봤다.
동주도 수성동 계곡을 거닐며 하늘의 별을 올려 보았겠지.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시 조금 더 내려와 서촌에서 박노수 미술관, 이상범 화가의 생가, 홍건익 가옥등을 둘러 보았다.
박노수 미술관은 종로 구립 미술관이 되어 입장료 3000원을 받고 있었다.
벽돌로 지어진 일본식 가옥으로 집 앞의 좁은 정원과 집 뒤의 정자를 화가가 직접 꾸몄다고 한다.
집안에는 화가의 자품들을 전시하고 있었으며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고 일, 이층을 둘러보았다.
색채를 사용한 한국화로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의 작은 미술관이었다.
이상범 화가의 집은 전통적인 서울의 기역자 한옥이었다.
한칸자리 방들이 규모있게 배열되어 있었고 아마도 화가 사용하던 살림살이들이 그대로 진열되어 있어 친근감이 느껴졌다. 놋그릇, 장식장에 들어있는 TV, 부엌에 걸려있는 무쇠솥, 그리고 옆집을 터서 만들어 놓은 작업실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홍건익 가옥은 상인의 집답게 조금더 크고 개방적으로 만들어진 한옥이었다. 부잣집이었다.
어느 시대나 잘 사는 사람들은 잘 살았던 것 같다.
조금 더 내려와 통인시장 먹거리 골목의 체부동 잔치집에서 둘러 앉았다.
잔치국수와 두부김치, 부추파전, 그리고 해창 막걸리 6°, 우곡생주, 그리고 장수 막걸리 2병을 나누어 마셨다.
해창 막걸리와 우곡생주는 독특했지만 병당 13000원으로 장수막걸리 세병보다 비싼 막걸리였다.
해창 막걸리 12°는 28000원이나 했다. 막걸리도 고급화하면 서민의 술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술집 대들보에 고 노회찬 의원의 사인이 걸려 있었다. 노의원은 내가 사는 지역의 국회의원이었다.
마들역에 내리면 그곳에서 주민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노의원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마들역사에는 노의원이 만들어 놓은 노동자를 위한 시설들이 있어 그곳을 지날 때 마다 노회찬 의원을 그리워한다.
언제 또 노의원 같은 정치인을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그리운 노회찬 의원!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빨래를 걷어 앞에 가져다 놓으며 당신은 빨래를 참 예쁘게 잘 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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