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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와 발렌타인데이

눈떠! 2024. 2. 14. 11:36
2.14.
연인끼리 사랑의 의미로 쵸코렛을 선물하는 날로 젊은이들 사이에는 발렌타인 데이로 뜨거운 날이다.
 
그러나 1910년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께서 오랜고문 끝에 일본 관동 도독부 지방 법원으로 송치돼 6회에 결친 공판 끝에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조선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해치는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하고 러시아 경찰에게 붙잡혀 일본군에 인계되었다.
그러나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일관하였으며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범행 동기를 묻는 일본 검찰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열 다섯 개로 조목조목 열거하였다.
첫 째 대한제국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두 번째 대한제국 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킨 죄.
세 번째 을사 5늑약과 정미 7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네 번째 무고한 조선인을 학살한 죄.
다섯 번째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여섯 번째 철도와 광산 ᆞ산림 ᆞ천택을 강제로 탈취한 죄.
일곱 번째 제일은행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게 한 죄.
여덟 번째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한 죄.
아홉 번째 대한제국 교육을 방해한 죄.
열 번째 조선인의 외국 유학을 금지한 죄.
열 한 번째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운 죄.
열 두 번째 조선인이 일본의 보호를 받고싶어 한다고 전세계에 거짓 선전한 죄.
열 세 번째 조선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데 조선이 태평무사하다고 일황에게 거짓말한 죄.
열 네 번째 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
열 다섯 번째 일본 황제의 아버지 태황제를 시해한 죄.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께서 옥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안중근의사에게 전한 편지도
이 땅의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어미는 살아서 너와 상봉하기를 기망하지 않노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망설이지 말고 죽으라. "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답게 안중근 의사께서는 죽음을 맞아 다음과 같이 유언하셨다.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는 우리 민족의 생명과 같이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나의 목숨도 아깝지 않다." 라는 말과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 해다요.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요.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오전 9시에 뤼순감옥 사형장으로 끌려가 1시간 뒤인 오전 10시에 순국했다.
일본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이 민중들에게 공개되면 그곳이 항일운동이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해 안중근 의사의 유해와 묻힌 곳을 끝까지 비밀에 부쳤다. 지금까지 유해가 묻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이유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은 효창공원에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만들고 유해를 찾아 모시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간악함에 다시 한 번 치가 떨린다.
 
안중근 의사께서도 일제의 속박에서 해방된 우리나라에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마음껏 사랑하길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던져 헌신한 분들이 계셔서 우리가 오늘을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