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교사 트레킹

퇴직 교사 트레킹 모임 서울 둘레길 첫날(2024.4.20)

눈떠! 2024. 4. 20. 22:38

오늘 퇴직 교사들 트레킹 모임에서 서울 둘레길을 시작했다.

지난해 북한산 둘레길을 완주하고 2월에 안산 둘레길을, 3월에 윤동주 문학관에서 시작하여 서촌을 답사한 후 오늘 드디어 서울 둘레길 대장정에 나섰다.

김 선생님께서 당진에 계시는 어머님 문안을 가시는 바람에 한 명이 부족했지만 나의 선배이자 친구이며 삶의 길잡이가 되어 주신 정 선생님을 초대했다.

10시 도봉산 역 2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지하철 역의 동선 안내가 정말 불편하고 또 잘못되어 있어 7호선과 1호선 역사를 한 바퀴 빙 돌아 출구로 나왔는데 출구에는 3번이라고 표시되어 있어 잠시 당황했다. 마침 유 선생님을 만났는데 서로 상대를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쉬며 불편함을 이야기했다. 유 선생님은 웃으시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하긴 이곳을 그렇게 많이 다닌 나도 당황했으니 처음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송 선생님은 서울 둘레길 출발 지점인 창포원에서 기다리신다고 해 카톡에 아직 안 오신 분들에게 고지를 하고 창포원에 가려 했는데 바로 서 선생님과 정 선생님이 연달아 나오셨다. 다들 출구를 찾느라 조금씩 헤매셨다고 한다.

문 선생님께 창포원 서울 둘레길 출발점으로 오시라고 문자를 보내고 함께 이동을 했다.

창포원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지도와 둘레길 인증 카드를 받아들고 출발하고 또 우리처럼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문 선생님이 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한 후 안내 지도와 인증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카드를 한 장 씩 챙기고 출발 지점에서 스탬프를 찍은 다음 창포원을 반 바퀴 정도 빙 돌아 중랑천으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 우산을 쓰기도 했는데 송 선생님을 독특한 우의를 챙겨 오시는 바람에 사진만 찍고 바로 벗어 가방에 넣었다. 오래 사용하지 않고 보관한 덕분에 비닐 우의가 삭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바탕 웃음으로 출발을 기념했다.

다른 사람들은 상도교로 돌아 수락산으로 향했지만 이 근처에 사는 덕분에 근처의 조그만 다리를 지나 수락 리버 시티 아파트 사이를 통과해 수락산으로 행했다. 이 아파트는 단지 중앙을 지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3,4 단지는 서울이고 1,2 단지는 의정부 소속인 재미있는 아파트로 2단지 주민들이 서울로 행정 구역을 변경해 달라고 벽에 플랭카드도 걸고 소송도 한다는 말이 있다. 행정 구역이 어디냐 차이로 같은 평수의 아파트 가격이 다르다고 한다.

아파트를 지나 동일로를 건너 수락산으로 접어들었다. 2년 전에 친구와 둘이 걸었을 때보다 둘레 길을 나타내는 이정표와 길 자체도 많이 정비되고 개선되어 걷기가 많이 편해졌다. 문 선생님이 목감기가 심하게 걸려 있어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목소리만 쉬었을 뿐 다른 곳은 괜찮다고 하시며 잘 걸으셨다. 수락산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연두를 지나 초록으로 변한 나무들 사이를 걷는 기분은 참으로 신선하고 좋았다. 풀과 나무들이 내뿜는 초록의 생명의 기운이 아주 조금씩 내리는 가랑비 사이로 뿜어져 나와 우리를 감싸고 돌았다.

게다가 좋은 사람들과 걷는 기쁨은 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함께 한 지난 세월의 추억을 꺼내기도 하고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며 입에 끼어 있는 곰팡이를 떨어버리는 행복한 시간이다. 웃고 떠들며 두 시간정도 걷다 보니 땀이 조금 나고 다리도 약간 힘들어 능선에 마련된 간이 식탁에 둘러 앉았다.

각자가 가지고 온 간식을 꺼내 서로 나누어 놓고 휴대용 포켓 술병에 싸온 스카치 불루 21년 산을 나누어 마셨다. 이 술은 재 작년에 군에 있는 제자 아이가 선생님 퇴직하신다고 다녀가며 선물한 술이다. 그 아이도 이렇게 선생님들과 나누어 마셔서 기뻐했을 거라 생각한다.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함께한 세월이 40년이 가까우니 추억을 꺼내도 꺼내도 끊이질 않고 힘들고 가슴 아프고 속상했던 일도 오래되어 숙성한 된장처럼 곰삭아 모두 웃음의 재료가 되었다. 또 각자 집안에서 겪고 있는 일들도 나이 들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있는 것 같아 동병상련의 격려가 되고 역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수락산 먹자 골목을 지나 수락산을 빙 돌아 수락산 당고개 공원으로 내려왔다. 서울 들레길 1구간의 삼분의 일을 걸었는데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기로 하고 당고개 역 근처의 순댓국 집에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막걸리, 소주를 한 병 씩 시켜서 막걸리 파와 소주 파로 나누어 간단히 반주를 겸해 순댓국을 맛있게 먹었다.

오늘도 유 선생님께서 별 다방에 가서 커피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별 다방이 당고개 역 근처에는 없고 상계역과 노원 역 사이에 있어 지하철 밑을 따라 그 곳까지 걸었다.

유 선생님은 서울에도 별 다방이 없는 이런 촌스러운(?) 곳이 있다며 웃었다.

그렇게 걸어 별다방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좌석이 꽉 차 앉을 곳이 없었다.

이 층 좌석에는 노트 북을 펼쳐두고 무언가 하는 젊은 여성들로 그리고 젊은 여성이 있는 곳에 따라 붙어야 하는 젊은 남성들, 그리고 나이 들고 시간 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참으로 대단한 별다방 사랑이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노원역 1번 출구 근처의 시드누아 라는 빵과 커피를 파는 곳으로 갔다. 이곳도 지하와 2층은 좌석이고 1층에서는 빵들이 진열되어 있고 주문을 받는 곳인데 역시 별 다방 보다 조금 여유가 있긴 하지만 사람들로 가득했다.

참으로 대단한 커피 사랑이다. 역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것도 젊은 여성들이.

다행스럽게 2층에 6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잡았다.

유 선생님과 송선생님께서 별 다방 들어갈 때 미리 주문 받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아메리카노, 카페 라떼 각 2잔을 들고 2 층으로 올라 오셨다.

배부르고 따뜻한 커피를 앞에 놓고 좋은 사람들과 앉아 있으니 부러울게 없었다. 참 좋다.

1시간 정도 수다를 떨다가 다음 달 수락산 당고개 공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선생님들은 4호선으로, 7호선으로 가시고 나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마들역 근처에 와서 쌀로 만든 호두과자를 두 봉지 사서 한 봉지는 어머니 댁에 들려 드시라고 드리고 한 봉지는 집으로 가지고 와 아내에게 주었다.

하루가 짧게 훅 지나갔다. 요즘은 정말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사람들은 퇴직하면 무언가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아 지루하고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 행복하게 지내는지 쏜살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실감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삶의 무게로 힘들다고 하고 또 지구 곳곳에서 전쟁과 재난으로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대체로 평화롭고 한가하며 또 바쁘게 사는 것 같아 행복하다.

좋은 곳에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아내가 건강하게 옆을 지키고 웃어주며 자식들이 옆에 살아 손주들 재롱과 떼쓰는 것 구경한다. 이곳 저곳 아프다고 하시고 돌보아 드려야 하지만 어머니도 가까이 계시고 가장 중요한 등 붙이고 누울 내 집이 있고 맛있는 집 밥을 먹을 수 있으며 군것질하고 우유 사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책보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며 뒷산인 수락산과 앞 개천인 중랑천 수변 공원을 산책하니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하나 하나 따지고 비교하면 불편하고 부족한 것이 왜 없겠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별 부럽고 불편하고 무언가 더 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

옷도 신발도 운동 장비도 먹을 것도 더 부러운 것이 없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이렇게 살다 자식들에게 고생 시키지 않고 어느 날 조용히 훅 떠나면 정말 좋겠다.

아 행복하게 하루가 가고 또 행복한 내일이 오겠구나.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