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교사 트레킹

2024년 7월 29일 동성 퇴직 교사 트레킹 네번째 (서울 둘레길 4구간, 망우 용마산 코스, 7.7km, 3시간, 하)

눈떠! 2024. 7. 29. 22:00
2024년 7월 29일 동성 퇴직 교사 트레킹 네번째 (서울 둘레길 4구간, 망우 용마산 코스, 7.7km, 3시간, 하)
서울 둘레길 걷기 네번 째 코스인 망우, 용마산 코스를 걸었다.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헬스를 가지 않고 꿈지럭 대다가 9시 10분에 집을 나섰다.
작은 아들이 엄마 드시라고 사온 부안 뽕주와 버섯 말려서 조미한 안주, 손녀 주려고 사다 놓은 과자 한봉지, 물 한통을 챙기고 쓰지도 않지만 습관적으로 들고 다니는 등산 스틱 두 개, 우산을 넣은 가방을 메고 나왔다.
9시 45분 화랑대 역에 도착해 5번 출구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서선생님께서는 손녀가 방학을 하는 바람에 아이와 놀아주느라, 유선생님께서 갑자기 생긴 일 때문에 참석을 못하셔서 5명이 모였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남궁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늘은 몹시 바쁜 일이 있어 힘께 힐 수 없다고 하셨다.
 
정류장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곧이어 선생님들이 도착하셔서 묵동천을 따라 중랑 캠핑숲까지 걸었다.
목동천은 정비가 잘 된 하천길이 었지만 길이가 짧았고 중랑캠핑숲까지는 아파트 사이의 큰 길이었다.
큰 길 가로등에 둘레길 표시가 잘 되어 있었지만 조금씩 헤메며 양원역까지 걷다 보니 신내 어울 공원에 있다는 둘레길 스탬프 찍는 곳을 그냥 지나쳤다.
하늘에는 잿빛 구름으로 흐려있고 비는 오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지 않고 습도는 높아 후텁지근 했다.
 
중랑 캠핑숲을 지나 배나무 과수원을 가로질러 숲길로 접어들었다.
과수원에는 굵은 배나무들이 많이 있었지만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서인지 나무들이 병들어 잎이 검게 변하거나 아이 주먹만한 배들이 종이 봉지에 싸여 있지 않고 그대로 달려 있었다. 선생님 한분이 아마도 친환경 농법으로 키우는게 아닐까 하고 말씀하셨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숲에 접어들어 조금 걷다 나무 테크 위의 휴식 공간을 발견하고 잠시 숨도 돌리고 간단히 요기도 하기로 했다. 역시나 각자 집에서 준비해온 것들을 내놓으니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에너지 바, 정성스럽게 깍은 복숭아, 쑥 가래떡, 부안 뽕주, 노르웨이 위스키, 말린 버섯 안주등이 나왔다. 위스키는 아껴뒀다 점심 먹을 때 먹기로 하고 뽕주를 조그만 잔에 두 서너 잔 씩 나누어 마셨다.
 
중랑캠핑 숲을 지나 구름다리를 건너 망우산에 들어섰다.
예전에는 망우리 공동묘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공원묘지로서의 용도가 아니라 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잇는 중이다.
묘지의 사용을 연장해 주지 않고 독립 유공자나 우리 근세사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분들의 무덤은 잘 보존하여 주민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공원으로 꾸미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성묘보다는 산책이나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며 더불어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공원 입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순환도로를 따라 걷다가 중랑 전망대에서 서울의 북쪽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 전에 저 많은 집들이 있는데 우리는 집이 없다며 아내와 나눈 서글펐던 이야기를 하며 우리나라의 주택 정책에 대해 한바탕 욕을 해줬다. 집이 없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집이 있는 사람들, 그것도 여러채를 보유한 사람들을 위한 주택 정책을 펴는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했지만 속이 씁슬했다. 작은 아들도 장가를 가면 당장 살아갈 집이 가장 큰 문제일터인데 국가가 내 집이 아니더라도 마음 놓고 살수 있는 싼 다양한 크기의 임대 주택을 지어 분양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실제 나도 결혼해 상계동에 방 세개 짜리 아파트를 장만하느라 평생을 빚 갚느라 허덕였다.
내가 공교육 교사라는 쓸데없는 자부심도 한몫을 했지만 아이들에게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한 것도 사실 그 빚이 한몫을 했다. 얼마 전 산책울 허며 아내는 만약 아이들이 제대로 대학에 가서 당신이 살았지 그러지 않았다면 평생을 자기 구뱍 속에 살았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35년 쯤 걸려 빚을 다 갚고는 아내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얘들아 너희들이 나를 살렸구나. 고맙다. 고마워.
 
용마산 깔딱 고개 쉼터에서 사가정 역으로 내려와 지난번에 들른 황박사 족발집으로 선생님들을 안내했다.
사가정역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가까운 줄 알았는데 꽤 멀리 있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도착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3시 30분부터 영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이런 낭패가 있나하고 당황하는 중 송선생님이 이 동내는 자기 가 좀 안다며 자기가 손님 모시고 가는 이학갈비 면목점으로 가자고 했다.
온 길을 다시 돌아가려니 힘이 빠지고 사가정 역을 지나 더 가야 하니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하는데 정 선생님께서 1km 도 안되는 거리니 어차피 걸으려 온 거 걷자고 하셔서 걸어 갔다.
 
이학 갈비에 올라가니 사람들이 많이 있어 잘 되는 집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특히 어르신들이 많은 것을 보니 나름 음식 맛에 자신이 있는 곳인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거의 모든 음식을 맛있게 잘 먹지만 송 선생님은 동성 학교에서는 소문난 미식가 이시니 더 믿음이 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정 선생님께서 이곳은 연세대 동문이 하는 집이라고 헤 그러면 연대 출신이 둘이나 되니 가서 말하고 할인을 받으라고 하며 한바탕 웃었다. 송 선생님 안내에 따라 갈비탕과 영양돌솥밥, 냉면, 돼지 갈비, 소주 맥주를 주문하고 아껴두었던 노르웨이 위스키를 꺼냈다. 우선 나온 소수와 맥주로 시원하게 소맥을 한 잔 만들어 쭉 마시니 더위가 싹 가셨다. 긴 세월을 함께 살았으니 수많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지나간 추억이라 웃음꽃으로 마무리되니 속이 시원했다. 물론 송선생님은 아직 일년 반이 남았으니 조금 힘드시겠다고 위로도 해 가며 식사를 즐겼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가져다 위스키를 타 마시고 마무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정산을 하려고 하니 송 선생님께서 자기 동네라며 미리 계산을 했다고 했다.
그러지 않기로 해 놓고는 항상 이런 일이 생기니 고맙기도 하고 또 미안한 일이다.
식당에서 내려와 보니 일층에 별다방이 있었다.
별다방 하면 유 선생님이 생각났다. 둘레길 걸음을 끝내고 식사하고 헤아지기 전에 늘 별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사줘야 직성이 풀리는 유선생님 이 오늘 오셨다면 정말 좋아했을 터인데. . . . . . .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가정 역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문 선생님께서 식당 문 앞 커피 마시는 곳에 가방을 두고 왔다고 말씀하셔서 다시 식당으로 가셨다. 모두 가방을 가져오는 문 선생님을 기다렸다 다음을 기약하며 송 선생님은 버스로 다른 분들은 모두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내려갔다. 그리고 지하에서 정 선생님과 나는 북쪽으로 문 선생님과 김 선생님은 남쪽으로 헤어졌다.
 
모두들 한 달 잘 보내시고 다음 달에 만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