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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마음 나누어 받기

눈떠! 2026. 1. 12. 22:09
어제 (2026.1.11. 일요일) 아침 아홉시 반쯤 김행수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내가 바로 받지 못해 다시 걸었더니 5분 후면 집앞에 도착하니 상원초등학교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파카를 걸치고 나가니 이미 아파트 안쪽에 들어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문을 열고 나오면서 고향에 다녀왔다며 뒷좌석 문을 열고는 검은 봉지를 꺼내 손에 쥐어줬다. 봉지를 열어 보이며 안쪽에 무와 굴, 그리고
우럭이라는 조개라고 말했다. 아마도 부모님께서 농사지은 것을 정성스럽게 싸주신 것일게다. 선생님은 무가 너무 많아서 처치 곤란해 나누어드린다고 하며 무채를 해드시든지 알아서 요리해 먹으란다. 그리고 굴은 아내와 자연산 굴을 캔 거라 아마 굴 껍질이 일부 붙어있을 수 있으니 찬물에 서너번 휘휘 저어서 헹군 후에 회로 먹든지 요리해서 드시면 되고, 나머지 작은 봉지는 우럭이라는 조개인데, 떡국 같은 걸 끓여드시거나 잘게 다지듯해서 밀가루 파전이나 뭐든 전으로 해먹으면 맛있다고 설명을 했다.
그리고는 바로 차에 올라 인사를 하곤 휙 가버린다. 차뒤로 손을 흔들고 나도 집으로 올라왔다.
선생님은 고향에 다녀오면 부모님께서 챙겨주신 여러 농산물 수산물을 일부러 상계동에 들려 나누어 주고 간다. 너무 많이 주셔서 처치 곤란이라는 말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어 주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귀한 음식인지 나는 안다. 서울의 그 흔한 마트에 있는 삐까번쩍한 상품으로서의 농산물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가 담겨있는 소중한 음식이라는 것을. 선생님이 무심한듯 말하며 나누어 주는 무 하나, 시금치 몇 다발, 생선 몇마리, 굴 한봉지, 조개 한봉지, 감자 한상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는지 나는 안다. 그래서 맛있게 요리해 먹는다. 선생님과 사모님, 그리고 선생님 고향에 계신 얼굴도 한 번 못 뵌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정성껏 요리해 맛있게 먹는다. 혹시 아들 식구들이라도 와 같이 먹으면 이 음식이 얼마나 멀리서 마음을 담아 이곳에 왔는지를 설명한다. 동의하거나 말거나 얼마나 귀한 음식인지 이야기한다.
선생님은 먼 길을 일부러 달려와 고향 항기가 배어있는 음식 재료들을 나누어 주지만 나는 기껏 아내나 손주들이 먹으려고 사놓은 간식거리 한 봉지 가져다 준다.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는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과자 한봉지와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뿐이다.
아마도 선생님은 내 마음을 아실거라 믿는다. 지난 이십여 년 함께 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인지를 서로 봐왔으니 다른 것은 몰라도 서로의 마음은 어느 정도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선생님은 나뿐 아니라 우리 학교, 아니 전교조 사립중서부지회, 전교조 본부의 모든 선생님들과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어떤 일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가름하는 나침반이었다. 그렇다고 결코 딱딱한 정의의 칼날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하고 여리지만 옳고 그름이 분명한 다정하고 정 깊은 진짜 선생님이었다. 옳지 않은 일에는 추상같이 엄하지만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을 위한 일에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후배 선생님이 학교에 함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늘 자신을 돌아보고 처음 아이들 앞에 섰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던가?
퇴직을 하고서도 이렇게 귀한 음식을 나누어 주려고 멀리서 찾아주는 선생님이 계셔서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선생님 부모님께서 건강하시기를, 그래서 덕분에 나도 남해의 맛난 음식을 오래오래 얻어 먹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행수 선생님, 그리고 정선생님 고맙습니다.